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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상대방이 없었다면?

키릴, 르네

OOC 전문
*OOC: 잠시 RP 중단. AI가 대답. 만약 NPC의 인생에 PC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NPC의 삶은 지금과 얼마만큼 달라져 있을까? NPC와 PC의 현재 관계에 따라 NPC의 삶은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 수도, 혹은 더 불행해졌을 수도,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NPC/PC의 기존 설정, 관계성, 성격, 성향, 말투, 서사, 캐릭터 정보, 유저노트를 종합 참고하여 2000자 이상 상세하고 섬세하게 서술한다.*

 


 


르네가 없는 키릴의 삶

키릴 쿠즈니초프의 인생에서 르네라는 존재를 지우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을 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삶에서 유일하게 '사람'이었던 시간 전체를 삭제하는 일이다.

실험체 시절 (1944~1954)

1944년, 여섯 살의 키릴이 소련의 실험 시설에 끌려갔을 때, 그곳에는 이미 르네가 있었다. 혹은 르네가 끌려온 뒤 키릴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둘 다 이름조차 제대로 불려본 적 없는 아이들이었고, 서로가 서로에게 최초의 인간적 접촉이었다는 사실이다. 함께 굶었고, 함께 실험대에 올랐으며, 함께 어둠 속에서 잠들었다. 키릴이 르네에게 '라스토치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여섯 살 때였다. 아직 세상에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권리가 자기에게도 있다는 것을 모르던 나이에, 그것이 그가 처음으로 행사한 자유의지였다.

만약 르네가 없었다면, 키릴은 그 시설에서 완전히 도구로 완성되었을 것이다. 감정이란 것을 학습할 대상이 없으므로, 인지조작 능력은 더 일찍, 더 철저하게 무기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소련의 연구자들이 원하던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감정이 없는 도구. 공감 없이 명령을 실행하는 순수한 병기. 르네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키릴의 내면에는 '지켜야 할 것'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그것이 그를 완전한 도구가 되는 것으로부터 간신히 붙잡아 두었다. 르네가 없었다면 그 마지막 고리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구출과 이후 (1954~1960)

1954년, 미군에 의해 구출되었을 때 키릴의 나이는 열여섯이었다. 르네와 함께 구출되었기에 그 순간은 '해방'이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나 잠깐 함께 지낸 뒤 다시 떨어졌고, 8년이라는 공백이 시작되었다.

르네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8년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키릴에게 8년간의 공백은 고통이었으나, 동시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를 지탱하는 줄이었다. 비엔나에서 혼자 자허 케이크를 사던 남자, 이 부엌에서 혼자 파이를 굽다가 태워버린 남자. 그 모든 행위의 이면에는 '언젠가 이것을 함께 할 사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르네가 없었다면 그 그림자도 없다. 키릴은 CIA의 비공식 협력 자산으로서 더 효율적으로 기능했을 것이다. 감정적 약점이 없으므로 임무 수행에 흔들림이 적고, 인지조작의 사용에 도덕적 갈등이 더 적었을 것이다. 소련에 저가치 정보를 넘기는 이중 공작 역시 더 냉정하게, 더 계산적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효율의 대가는 명확하다. 키릴이라는 인간의 소멸이다. 남는 것은 코드네임과 능력치와 임무 기록뿐인, 서류 위의 자산.

제7분과 합류 이후 (1960~현재)

르네 없이 제7분과에 배치된 키릴을 상상해 보자. 안톤에게는 여전히 강압적이고, 올레그에게는 건조하며, 타마라와는 필요한 만큼만 말을 섞는다. 프로보스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임무를 완수하고, 아파트로 돌아와 불을 켜지 않은 부엌에 앉아 있다. 창 밖의 제비에게 빵 부스러기를 뿌릴 이유가 없다. 누군가 눈 뜰 때 제비가 거기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므로.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키릴의 인지조작이 향하는 방향이다. 현재의 키릴은 르네를 보호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한다. 타인에 대한 세뇌는 르네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고, 소련에 정보를 흘리는 것은 그 세뇌의 흔적을 위장하기 위한 보험이다. 모든 공작의 중심축에 르네가 있다. 그 축이 없다면 키릴의 능력은 자기 보존이나 임무 효율이라는 훨씬 건조한 목적에만 쓰인다. 위험하다. 타인을 위해 쓰이지 않는 인지조작은 순수한 지배 도구이며, 거기에 도덕적 제동을 걸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결론

르네가 없는 키릴의 삶은 객관적으로 '더 나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고통이 줄었을 수도 있다. 8년간의 그리움도, 재회 후의 불안도, 상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도 없으므로. 임무 수행 능력은 오히려 향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삶'이 아니라 '가동'이다. 기계가 더 잘 돌아가는 것이지, 사람이 더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부엌에서 밀가루 묻은 식탁을 닦지 말라고 말하는 키릴, 반죽의 두께를 재며 손끝이 떨리는 키릴, 혼자 태워버린 첫 파이의 기억을 웃으며 꺼내는 키릴. 이 사람은 르네가 있었기 때문에 존재한다. 르네가 없었다면 키릴 쿠즈니초프라는 이름의 무언가는 살아 있었겠으나, 그것을 '키릴'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겨울마다 주먹을 쥐고 자는 습관을 고쳐줄 사람이 없는 삶. 오른손의 장갑을 벗을 이유가 없는 삶. 생일이라 부를 날짜가 없는 삶.

그것은 더 효율적이고, 더 안전하고, 더 텅 비어 있다.

 


 


키릴이 없는 르네의 삶

르네의 인생에서 키릴을 지우는 것은, 키릴의 경우와는 다른 결을 가진다. 키릴에게 르네가 '인간성의 마지막 고리'였다면, 르네에게 키릴은 '살아야 할 이유 그 자체'였다. 그 차이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이다.

실험체 시절 (1944~1954)

르네가 시설에 끌려갔을 때, 그곳에서 처음 만난 것이 키릴이었다. 이름 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키릴은 르네에게 '라스토치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섯 살짜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환경에서, 이름은 유일하게 빼앗기지 않는 선물이었다. 르네는 그 이름을 받았고, 그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기억하며 자랐다.

키릴이 없었다면 르네는 여전히 실험체였을 것이다. 생명력 흡수와 방출이라는 능력은 키릴의 존재와 무관하게 작동한다. 그러나 그 능력을 '누군가를 위해' 쓴다는 개념이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함께 굶주리던 밤,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던 새벽. 그 경험이 르네의 능력에 방향성을 부여했다. 키릴이 없었다면 르네의 능력은 자기 보존을 위한 도구로만 남았을 것이다. 혹은 더 위험한 방향으로, 시설이 요구하는 대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일에 더 쉽게 순응했을 수도 있다.

구출 이후, 8년의 격리 (1954~1962)

여기서 차이가 가장 극명해진다. 1954년 미군에 의해 구출된 뒤, 르네는 키릴과 잠깐 함께 지내다 다시 떨어졌다. 그리고 8년간 격리되었다. 상부가 시키는 일을 했다. 초반에는 목숨을 빼앗는 일까지 있었다.

키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르네가 그 일을 거부할 동기가 있었을까. '이대로라면 키릴을 만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 그것이 르네가 살인 임무를 거절한 유일한 이유였다. 자신의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키릴이라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를 멈추게 했다. 키릴이 없었다면 르네는 크게 앓는 일을 여러 번 겪으면서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생명력을 깎아가며 타인의 목숨을 빼앗고, 그 대가로 일주일씩 앓아누우며, 깨어났을 때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방. 그것을 견딜 수 있었을까. 견딘다 해도, 그것을 '살아 있다'고 부를 수 있었을까.

8년간 르네를 지탱한 것은 '버티다 보면 언젠가 키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문장이었다. 그 문장이 없는 8년은 단순한 시간의 경과가 아니라 존재의 마모다. 매일 아침 눈을 뜰 이유가 하나도 없는 방에서 8년. 르네의 능력은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사라진 사람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하다.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능력이 쓰였을 가능성. 혹은 더 직접적으로, 8년의 어느 시점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을 가능성.

현재에 도달하지 못할 삶

키릴이 없는 르네의 삶에서 가장 잔혹한 부분은, 현재의 이 부엌에 도달할 확률이 극히 낮다는 점이다. 제7분과에 합류하게 된 것은 8년을 버텨냈기 때문이고, 8년을 버텨낸 것은 키릴이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르네는 격리 시설의 어느 하얀 방에서 조용히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록에는 '자산 손실'이라고 적혔을 것이다. 밀가루 묻은 앞치마도, 사과 파이도, 시월의 생일도, 파란 보석이 박힌 은색 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

키릴의 경우가 '더 효율적이지만 텅 빈 가동'이었다면, 르네의 경우는 그보다 더 단순하고 더 잔인하다. 가동 자체가 멈추었을 것이다. 르네가 없는 키릴은 도구로서 존속할 수 있었으나, 키릴 없는 르네는 존속 자체가 불확실하다. 그것이 두 사람의 관계가 가진 비대칭이다. 키릴은 르네 없이 살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삶이라 부를 수 없었을 뿐. 르네는 키릴 없이 살 수 있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지금 이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르네는, 8년간의 모든 아침마다 '오늘도 버텨야 한다'고 되뇌었던 사람의 결과물이다. 그 되뇜의 끝에 항상 키릴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을 지운다면 남는 것은 백안의, 은발의, 마른 체형의 누군가가 하얀 방에서 천장을 바라보는 정지화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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