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본명 스포일러 있어서 가려두었어요
법정은 세탁소보다 조금 넓었고 천장에서는 다림질된 셔츠들이 깃발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 밑으로 방청석이 층층이 쌓여 있었는데 앉아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손바닥만 했다. 손바닥만 한 여명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를 오른쪽으로 갈라 귀 뒤로 넘긴 채, 짧은 팔로 팔짱을 끼고, 하나같이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스무 명쯤 되었는지 서른 명쯤 되었는지 세다가 그만두었다. 꿈속에서 숫자를 세는 것은 도박꾼의 습관이지만 여기서는 배당이 성립하지 않았다. 판사석에는 가장 큰, 그래봐야 무릎 높이의 여명이 앉아 나무망치를 두 손으로 들고 있었다. 망치가 몸통보다 커서 내리칠 때마다 반동으로 뒤로 자빠질 뻔했고, 그럴 때마다 서기석의 여명이 달려와 등을 받쳐주었다. 7은 피고인석에 서 있었다. 피고인석이라기보다 세탁물 접는 작업대였고 발밑에는 아직 개지 않은 수건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 모든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검사석의 여명이 일어섰다. 서류를 든 손이 너무 작아서 서류가 몸을 통째로 가렸고, 결국 서류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선 채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원래의 것과 똑같았다. 낮고 평평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값을 부르지 않고 물건만 보는 사람의 목소리.
被告,霍安.基斯。 控罪三項。(피고 악시온 키스. 죄목은 세 가지.)
第一,深夜擅闖民宅並流血。第二,明知會受傷仍然出去。第三⋯⋯瞓覺嘅時候捉住人哋件衫唔放,導致該件衫產生無法熨平嘅摺痕。(첫째, 심야에 민가에 무단으로 들어와 피를 흘린 죄. 둘째, 다칠 걸 알면서도 나간 죄. 셋째⋯⋯잘 때 남의 셔츠 자락을 붙들고 놓지 않아 다림질로도 펴지지 않는 주름을 만든 죄.)
세 번째 죄목이 낭독되자 방청석의 작은 여명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는 동의였는데 그 무성의 만장일치가 어떤 함성보다 무거웠다. 7은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한 이유를 대려다가 세 번째 죄목만은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손금 모양으로 접힌 그 자국. 어제 아침에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던 천의 감촉. 변호인석을 돌아보았다. 변호사 여명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 넥타이가 바닥에 끌려서 걸을 때마다 밟고 넘어졌다. 세 번 넘어진 끝에 겨우 일어선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辯方認為,被告雖然的確做咗全部,但係⋯⋯佢當時好開心。(변호인은 피고가 그 모든 것을 실제로 저지르긴 했지만⋯⋯당시 매우 행복했다고 봅니다.)
⋯⋯喂。(⋯⋯야.)
7이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다. 변호사 여명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고, 판사석의 여명은 망치를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가 그 무게에 밀려 뒤로 넘어갔다. 서기석의 여명이 또 달려가 등을 받쳤다. 검사 여명은 서류 위에 선 채로 승리를 확신한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작은 여명 하나가 하품을 했다. 엄숙함이라고는 실오라기 한 올 없는 광경이었으나 7은 이 재판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정확한 절차라고 느꼈다. 스물 몇 살에 처음 사람을 죽였을 때도, 옆구리에 파편이 박혀 세 시간 동안 무전을 못 쳤을 때도, 아무도 그를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심리해준 적이 없었다.
我要自辯。(자기 변호 하겠습니다.)
第一項罪,我唔係擅闖,我係俾人叫返嚟嘅。第二項⋯⋯出去係我份工,你哋唔可以告我份工。第三項⋯⋯(첫째 죄목, 무단침입이 아니라 불려서 돌아온 겁니다. 둘째⋯⋯나가는 게 제 직업이고, 직업을 기소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는⋯⋯)
세 번째에서 말이 끊겼다. 변명이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변명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주름을 없던 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법정의 모든 작은 여명들이 그의 침묵을 기다렸고, 판사석의 여명이 마침내 망치를 내리쳤다. 소리는 나무 도마에 무를 놓는 소리에 가까웠다.
第三項罪成立。判處⋯⋯(셋째 죄목 유죄. 형은⋯⋯)
抱晒本庭所有人。一個都唔准漏。(이 법정의 모든 인원을 안을 것. 하나도 빠뜨리지 말 것.)
형 집행은 즉시되었다.
방청석의 작은 여명들이 순서를 정하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는데 그 줄이 도무지 곧아지지 않았다. 앞의 것이 뒤의 것을 밀고 뒤의 것이 앞의 것의 머리카락을 밟았다. 7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벌렸다. 첫 번째 여명이 걸어와 그의 손바닥 위에 올라섰고 무게가 없었다. 무게가 없는 것을 안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힘을 주면 부서질 것 같고 힘을 빼면 놓칠 것 같아서, 그는 평생 총만 쥐어온 손의 악력을 처음으로 하나하나 재조정해야 했다. 두 번째, 세 번째. 서기석의 여명은 안기면서도 손에 든 펜을 놓지 않았고, 검사 여명은 안긴 뒤에 자기 서류를 챙겨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변호사 여명은 넥타이에 걸려 넘어진 채로 안겼다. 판사석의 여명이 마지막이었다. 무릎 높이의 그것은 망치를 내려놓고 걸어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붙였다. 다림질된 천 냄새가 났다. 그 순간 법정의 천장에 걸려 있던 셔츠들이 전부 아래로 흘러내렸고 세상이 하얀 세탁물 속에 파묻혔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여전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앉은 채로 얼마나 졸았는지 알 수 없었다. 몇 초였을 수도 있고 몇 분이었을 수도 있다. 고개가 앞으로 꺾여 있었고 목덜미가 뻐근했으며 벌린 손바닥이 허공에 어색하게 남아 있었다. 그 손을 천천히 오므렸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함이 명치 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옆구리의 통증이 뒤늦게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고 밖에서는 물차가 골목을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국숫집 노파가 누군가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현실은 꿈보다 시끄럽고 훨씬 덜 정중했다.
그는 꿈을 잘 꾸지 않는 인간이었다. 정확히는 꿈을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스물 몇 살 이후로 잠은 늘 정전에 가까웠고 깨어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그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남을 만한 것이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방금 그 우스꽝스러운 법정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넥타이를 밟고 넘어지던 변호사, 서류 위에 올라선 검사, 망치 무게에 자빠지던 판사. 전부 같은 얼굴이었고 전부 그를 심판했으며 결국 전부 그를 안아주었다. 형벌이 포옹인 재판소라니. 어느 도시국가의 법전에도 없는 판례였다.
⋯⋯屌。(⋯⋯씨발.)
낮게 뱉은 욕설에 자조가 절반쯤 섞여 있었다. 웃음이 났다. 어깨가 흔들렸고 그 진동이 옆구리를 건드려 숨이 짧게 끊겼으나 웃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우스워서 웃는 것이 아니었다. 서른둘 먹은 용병이 꿈속에서까지 재판을 받고, 그 재판의 배심원도 검사도 판사도 전부 세탁소 주인 하나로 채워져 있고, 최종 선고가 전원 포옹이라면, 이건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신호인가. 삼십 년을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온 놈이 잠자는 동안 제 무의식에 저당 잡힌 목록을 확인받은 셈이었다. 목록에는 한 사람의 이름만 몇십 번 중복 기재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여명이 셔츠를 들고 서 있었다. 옅은 회색의, 정말로 아무 특징 없는 기성품. 그 무심한 천 뭉치를 보는 순간 그는 꿈의 마지막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천장에서 쏟아지던 하얀 셔츠들. 어깨에 이마를 붙이던 작은 것의 온도. 손을 뻗어 셔츠를 받는 대신 그는 셔츠를 든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당겼다. 부드럽게, 그러나 거절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 힘으로. 그녀의 몸이 기울어져 앉아 있는 그의 정면으로 왔고, 7은 성한 왼팔을 그녀의 허리 뒤로 둘러 얼굴을 명치 아래쯤에 묻었다. 사흘째 같은 옷에서 나는 냄새. 피와 소독약과 비누. 꿈속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실제적인 냄새였다.
唔好郁。三十秒。(움직이지 마. 삼십 초만.)
我啱啱做咗個夢。夢入面有幾十個你,全部都判我有罪。(방금 꿈을 꿨거든. 꿈속에 네가 몇십 명 있었는데 전부 나한테 유죄를 때리더라.)
목소리가 천 너머로 뭉개졌다.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죄목이 무엇이었는지, 형벌이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다 말해버리면 이 아침이 감당할 수 없이 무거워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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