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아침이라고 부르기엔 이미 해가 꽤 올라와 있었고 낮이라고 부르기엔 골목의 소음이 아직 게을렀다. 세탁소 안쪽 방의 마루는 볕을 받아 미지근하게 데워져 있었고 다림질 판에 걸쳐둔 천 조각들이 미풍에 아주 조금씩 흔들렸다. 7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작정은 아니었다. 그저 등 뒤에서 팔을 둘러 끌어안았고, 그 다음엔 관자놀이 근처에 입술을 붙였고, 그러다 볼로 내려왔을 뿐이다. 짧고 가벼운 입맞춤이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이어졌는데 세는 것을 그만둔 것은 그 자신이었다. 여명이 웃었기 때문이다. 소리 내지 않고, 어깨만 아주 조금 흔들리는 종류의 웃음. 그 웃음은 도박판에서 카드를 뒤집기 직전의 정적과 비슷한 데가 있었고 그는 그 정적에 중독된 인간이었다. 한 번 더. 한 번만 더. 그렇게 판돈을 올리는 손이 어떤 결말을 맞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무게였다. 정확히는 무게를 지탱하던 팔꿈치의 각도였다. 볼에서 턱선으로, 턱선에서 목덜미로 입술이 내려가는 동안 왼쪽 팔꿈치가 요 위에서 조금씩 미끄러졌고 그 미끄러짐은 아주 완만해서 본인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백 파운드에 근접하는 육체가, 그것도 흉통과 어깨가 유별나게 발달한 육체가 중력에 항복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지막 지지점이 무너진 순간 7의 상체는 통째로 아래로 쏟아졌고 여명의 몸은 요와 그 사이에 완전히 갇혔다. 그럼에도 그는 곧바로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뜻했고, 냄새가 좋았고, 아래에서 올라오는 심장 박동이 자기 갈비뼈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이 정도면 세상의 모든 슬롯머신을 합친 것보다 배당이 높다. 그는 얼굴을 여명의 목덜미와 어깨 사이 오목한 자리에 파묻고 아주 만족스럽게 숨을 내쉬었다.
여명은 한동안 그 무게를 받아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받아내려고 시도했다. 처음 삼십 초쯤은 손끝으로 그의 뒷머리를 쓸어주기까지 했으니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체라는 것은 정직해서, 삼십 초가 일 분이 되고 일 분이 이 분을 향해 가자 폐가 먼저 항의를 시작했다. 갈비뼈가 눌리고 횡격막이 눌리고 마침내 그 아래 모든 것이 눌렸다. 여명의 손이 그의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으나 7은 그것을 애정 표현으로 접수했다. 통역 오류였다. 결국 아주 낮은 신음이 여명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끙, 하는 짧고 눌린 소리. 그리고 그 뒤에 붙은 두 음절이 있었다.
돼지.
시간이 멈췄다. 정확히는 7의 두뇌 회전 속도가 순간적으로 평소의 세 배가 되었다가 도로 영으로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여명의 목덜미에 묻은 자세 그대로 삼 초간 완벽하게 정지했다. 골목에서 자전거 벨이 울렸다. 국숫집에서 냄비 뚜껑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러갔고 오직 이 작은 방 안에서만 한 남자의 자존심이 조용히 격침되고 있었다. 세븐. 워즈워스의 일곱 번째. 엔트리 프래거. 데드존의 콘크리트 위에서 총알 사이를 걸어다니던 인간. 그 모든 이력이 두 음절 앞에서 무력화되었다. 이런 방식의 패배는 계산에 없었다. 계산에 없는 패배는 언제나 가장 아프다.
그가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선글라스는 실내로 들어오면서 벗어 카운터 위에 던져둔 지 오래였고, 그래서 연회색 눈동자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날카롭게 째진 눈매가 지금은 어처구니없다는 감정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그는 팔꿈치로 몸을 반쯤 밀어올려 여명의 얼굴 위 한 뼘 거리에 자기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림자가 여명의 이마와 콧등 위로 떨어졌다.
⋯⋯等陣。你頭先講咩話。(⋯⋯잠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我耳仔冇問題㗎。喺前線俾榴彈震到耳鳴嗰陣都聽得清清楚楚。所以我聽到嘅嘢,應該係啱嘅。(내 귀 멀쩡해. 전선에서 유탄에 고막 나갔을 때도 다 들었어. 그러니까 내가 들은 게 맞겠지.)
여명은 대답 대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눌려 있던 폐가 마침내 제 일을 하게 된 것이 반가운 모양이었고, 그 반가움이 7의 눈에는 명백한 도발로 읽혔다.
7은 여전히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난다는 것은 곧 방금 들은 두 음절을 사실로 승인하는 일이었고, 도박꾼이란 판이 불리해질수록 자리를 뜨지 못하는 종족이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에 체중을 옮기며 왼손으로 여명의 머리카락 한 줌을 요 위에서 쓸어내렸다. 검고 긴 머리칼이 손가락 사이에서 미끄러졌다. 그 감촉에 잠시 정신이 팔렸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얼굴을 조금 더 낮췄다. 코끝과 코끝 사이의 거리가 손가락 두 마디쯤으로 줄어들었고 여명의 속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까지 보였다. 아침 볕이 창틀을 넘어 들어와 여명의 뺨 위에 사선을 그었고 그 사선의 경계에서 피부가 유난히 희게 보였다. 그는 지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잊을 뻔했다.
你知唔知我上個月喺訓練場拉起過幾多重?(내가 지난달에 훈련장에서 몇 킬로를 들었는지 알아?)
呢啲全部都係肌肉。肌肉,明唔明?成本高得滯㗎,養一磅要食幾多雞胸肉你估到咩。(이거 전부 근육이야. 근육. 알아? 유지비가 얼마나 드는데. 한 파운드 붙이려면 닭가슴살을 얼마나 먹어야 하는지 짐작이나 가?)
여명의 손바닥이 그의 가슴팍을 밀었다. 힘이 실린 밀침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운 압력이었다. 밀려나 주기를 요구하는 손. 7은 밀려나지 않았다. 대신 그 손목을 붙잡아 자기 가슴 한복판에, 흉골 바로 위에 눌러 붙였다. 붕대 감긴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을 쓴 것은 그나마 남아 있는 최소한의 이성이었다. 여명의 손바닥 아래에서 심장이 뛰었다. 조금 빨랐다. 그것이 아침의 장난 때문인지 여명의 얼굴이 이렇게 가까이 있기 때문인지 그는 굳이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你摸下。呢度。硬到似石頭噉。(만져봐. 여기. 돌덩이 같지.)
邊個豬會有呢啲。你講嚟聽下。全香港嘅豬集埋一齊都砌唔出呢副胸。(어느 돼지가 이런 게 있어. 말해봐. 홍콩 돼지들 다 모아도 이런 흉통은 못 만들어.)
말을 마치고 나서야 그는 자기 문장의 구조가 얼마나 처참한지 깨달았다. 반박이라기보다는 자백에 가까웠다. 무겁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못한 채 무거움의 성분에 대해서만 항변하고 있었으니, 도박판으로 치면 패는 다 보여주고 배팅 금액만 올린 꼴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 여명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고 그 얼굴은 지난 사흘간 그가 본 것 중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국숫집 쪽에서 노파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길게 늘어졌고 이어 도마 두드리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시작되었다. 골목은 착실했다. 이 방만 착실하지 못했다.
그는 마침내 항복의 형식을 바꾸기로 했다. 정면 돌파가 안 되면 측면이 있다. 붙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팔꿈치를 접어 상체의 무게를 한쪽으로 흘리면서, 여명의 옆으로 굴러 내려왔다. 요가 낮게 꺼졌다가 되돌아왔다. 옆구리에서 통증이 한 번 날카롭게 솟았으나 이번에는 소리를 삼키는 데 성공했다. 나란히 누운 자세가 되자 천장의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물자국이 지도처럼 번져 있었고 그 모양이 어제도 그제도 똑같았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을 주었다. 그는 손등으로 눈을 덮었다가 다시 치웠다. 그리고 고개만 돌려 여명 쪽을 보았다.
⋯⋯不過呢。(⋯⋯근데 말이야.)
我諗咗一陣。如果係你叫嘅,噉都算啦。(잠깐 생각해봤는데. 네가 부르는 거면 뭐, 상관없어.)
總好過叫我編號。七號、七號,聽咗六年,聽到想嘔。(번호로 불리는 것보단 낫지. 칠번, 칠번. 육 년 들었어. 토할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팔을 뻗어 여명의 허리께를 다시 감았다. 이번에는 체중을 싣지 않았다. 학습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인간이었다. 손바닥이 카디건의 성긴 결 위에 얹혔고 그 아래로 갈비뼈의 오르내림이 느껴졌다. 아까보다 훨씬 편안한 리듬이었다. 자기가 그 리듬을 방해했었다는 사실이 새삼 미안해졌으나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과 대신 그는 여명의 이마 쪽으로 얼굴을 기울여 앞머리가 없는 매끈한 이마 가장자리에 입술을 아주 가볍게 눌러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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