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방은 하얗고 작았다. 벽 네 면, 천장, 바닥 전부 같은 색. 문은 하나. 손잡이는 있으나 돌아가지 않았다. 키릴 쿠즈니초프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한 번 잡아당기고, 돌리고, 밀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어깨로 밀어 보았다. 역시. 금속도 아닌 것이 단단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창도 환기구도 없고, 빛의 출처도 알 수 없는 균일한 밝기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어린 시절의 방과 닮았다. 그 방은 더 넓었고, 바닥에 침대가 두 개 있었지만, 빛의 질감은 같았다.
앉지 않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서서 문을 보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그것이 조건이라면.
삼 분이 지났다.
키릴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오른손에 장갑이 없었다. 집에서 벗어 둔 채였다. 르네가 옆에 있을 때는 끼지 않기로 했으므로. 르네가 옆에 없는 지금도 끼지 않은 것이 이상했지만, 끼울 장갑 자체가 이 방에 없었다.
문을 다시 봤다. 움직이지 않았다.
르네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확신.
키릴은 벽에 기댄 뒤통수를 한 번 부딪쳤다.
이십 분이 지났다.
바닥에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하얀 방에서 바닥에 앉는 것은 포기의 자세였다. 여섯 살 때 배운 것이었다. 앉으면 일어나기 싫어지고, 일어나기 싫어지면 문이 열려도 나가지 못한다.
문 손잡이를 다시 잡아당겼다. 움직이지 않았다.
키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이 방에 말할 대상이 없었고, 혼잣말은 하지 않는 습관이었다.
대신 생각했다.
오늘 아침. 빵에 잼을 발라 먹였다.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웃었다. 키랴, 라고 불렀다.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아는 입은 하나뿐이었고, 그 입이 자기를 향해 웃으면서 그 이름을 말했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돌아가지 않았다.
— 그래서?
그래서 뭐가 부족한데.
사십오 분이 지났다.
키릴은 벽을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네 면을 한 바퀴 도는 데 열두 걸음. 열두 걸음마다 문 앞에서 멈추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고, 놓았다.
확신이라는 단어를 분해했다.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의 목록을 세웠다.
함께 살기로 했다. 옷을 옮겨왔다. 같은 침대에서 잤다. 몸을 허락했다. 이름을 불렀다. 울었다. 웃었다. 손가락을 걸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충분했다.
— 정말?
문은 열리지 않았다.
키릴의 등이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처음으로 바닥에 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팔을 올렸다. 이마를 팔뚝에 묻었다.
이 사람이 자기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인지, 의존인지, 습관인지, 어린 시절의 잔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흰 방에서 둘밖에 없었으므로 서로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구출된 뒤에도 팔 년 동안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자기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기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인지조작을 하지 않은 채 받는 애정을 믿지 못하는 자기가 우스웠다. 타인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는 인간이, 조작하지 않은 감정 앞에서 가장 무력했다.
문 손잡이를 올려다봤다. 저것이 열리려면 자기가 믿어야 했다. 르네가 자기를 사랑한다고. 다른 선택지가 있어도 자기를 골랐을 것이라고.
— 그랬을까.
한 시간 십 분.
문 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발소리. 키릴은 고개를 들었다.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맨발. 가볍고, 약간 불규칙한 보폭. 키릴은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무릎을 세운 채로 문을 올려다보았다. 그 발소리를 모를 리가 없었다. 열여덟 년 동안 들어 온 걸음이었다.
문 너머에서 멈추는 기척. 그리고 가만히 앉는 소리. 문 반대편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은 것이었다.
르네|「Кирюша. Ты там?」
"키랴. 거기 있어?"
키릴의 손이 문 표면에 닿았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아무 질감도 없는 표면. 이마를 대었다.
키릴|「...Да. Здесь.」
"...응. 여기."
목소리가 갈라졌다. 한 시간 넘게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르네|「Долго сидишь. Я видел. Что мешает?」
"오래 앉아 있더라. 봤어. 뭐가 걸려?"
키릴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에 기댄 이마가 무거웠다. 이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부족한 것은 이쪽이었다. 받아들이는 쪽이. 그 많은 증거를 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문제였다.
키릴|「Я не знаю, настоящее ли это. То, что ты чувствуешь. Я могу заставить любого полюбить меня — одним касанием. Поэтому... когда кто-то любит меня без этого, я не могу поверить.」
"이게 진짜인지 모르겠어. 네가 느끼는 것. 나는 누구든 한 번 만지면 나를 사랑하게 만들 수 있어. 그래서... 누군가 그것 없이 나를 좋아하면, 믿을 수가 없어."
문 너머에서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문 표면에 무언가가 닿는 소리가 났다. 손바닥. 문 이쪽에서 이마를 대고 있는 것과 같은 높이에.
르네|「Кирюша. Я ждал тебя восемь лет. Ты думаешь, у меня не было выбора? Был. Каждый день — сдаться, забыть, перестать надеяться. Я выбирал тебя. Каждый раз.」
"키랴. 나는 너를 팔 년 동안 기다렸어. 내게 선택지가 없었다고 생각해? 있었어. 매일. 포기하거나, 잊거나, 희망을 버리거나. 나는 너를 골랐어. 매번."
키릴의 손이 문 위에서 미끄러졌다. 손바닥이 닿은 자리를 찾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높이, 같은 위치. 손가락을 펼쳤다.
팔 년. 격리된 방에서 홀로. 목숨을 깎아내는 일을 하면서도 버틴 이유가 자기였다고, 이미 들었다. 들었는데 믿지 못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믿으면 잃을 것이 생기니까. 잃을 것이 생기면 두려우니까.
문 너머에서 다시 목소리가 왔다.
르네|「Дверь откроется. Ты знаешь, что нужно. Просто поверь мне. Как я верю тебе.」
"문은 열릴 거야. 뭐가 필요한지 알잖아. 그냥 나를 믿어. 내가 너를 믿는 것처럼."
키릴은 눈을 감았다. 문에 닿은 손바닥 아래에서 열이 느껴졌다. 문 너머의 체온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열을 선택했다.
—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입 안에서 굴렸다. 한 번 더.
— 선택지가 있었는데 나를 골랐다.
손잡이를 잡았다.
돌아갔다.
— 한 시간 십사 분.
문이 열리자 바닥에 앉아 있던 은발이 올려다보았다. 리본이 풀려 어깨 위로 흘러내려 있었고, 투명한 눈이 문틀 너머의 자기를 찾았다. 키릴은 문지방 위에 서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그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키릴|「...Пришёл за мной.」
"...데리러 왔구나."
무릎이 꺾이듯 바닥에 내려앉았다.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같은 높이가 되었다.
손을 뻗었다.
장갑 없는 오른손이 볼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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