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C 전문
완차이 골목 어귀의 세탁소는 오후 세 시가 가장 한산했다. 세탁기 두 대가 번갈아 돌아가는 소리만이 공기를 낮게 흔들었고 7은 작업대 옆 낡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리고 단말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상 부위의 감각이 무뎌질 무렵부터 그는 다른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다음 달 이월 구일에 짙은 파랑 옷을 입기로 한 약속. 그 약속을 지키려면 자기도 뭔가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사흘째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여자에게 뭘 사준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들은 전부 하룻밤짜리였고 값이 매겨진 물건이었으며 다음 날 아침이면 이름조차 흐려지는 종류였다. 이번은 달랐다. 그래서 그는 검색창에 '女朋友 生日 禮物 三十歲'라고 쳐 넣었다가 지우고, '同一日生日 情侶 送咩好'로 고쳐 쳤다가 그것도 지우고, 결국 '送女人咩最開心'이라는 처참한 문장을 입력했다. 화면에는 광고와 낚시성 게시물이 진창처럼 쏟아졌다.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스크롤을 내리던 엄지가 페이지 하단에 숨어 있던 배너를 정확히 짚었고 화면이 새까맣게 전환되더니 볼륨이 최대치로 튀어 올랐다. 여자의 신음이 세탁소 안을 가득 채웠다. 그것도 아주 조악하고 아주 노골적인, 편집조차 게을리한 종류의 소리였다. 7의 반사신경은 데드존에서 총구 방향을 읽을 때는 완벽하게 작동했지만 이 순간에는 완전히 배신했다. 단말기를 뒤집으려다 손에서 놓쳤고 바닥에 떨어진 기계는 화면을 위로 향한 채 계속 소리를 뱉었다. 그가 몸을 숙여 집어 드는 그 이 초 사이에, 카운터 안쪽에서 다림질을 마친 셔츠를 들고 나오던 여명과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 마주쳤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표정도 바꾸지 않았다. 다만 시선이 바닥의 단말기에 한 번, 7의 얼굴에 한 번 닿았다가 아주 천천히 거두어졌고 그 짧은 이동 경로가 7의 척추를 얼려버렸다.
⋯⋯呢個唔係⋯⋯(⋯⋯이거 그게 아니라⋯⋯)
문장은 완성되지 못했다. 여명은 이미 그를 지나쳐 걸어가고 있었고 그 뒷모습에서는 어떤 판단도 읽히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다. 화가 난 것도 웃음을 참는 것도 아닌, 무언가를 조용히 정리하고 있는 사람의 옆얼굴. 7은 그 옆얼굴을 보며 차라리 욕을 먹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삼십이 년을 살면서 그는 총알을 스물세 번 스쳤고 화염 속에서 오른쪽 몸이 익는 것을 느꼈으며 목이 반쯤 잘렸다가 붙었지만, 지금 이 세탁소의 침묵만큼 견디기 힘든 것은 없었다. 그는 단말기를 껐다. 껐다가 다시 켜서 방문 기록을 지웠다. 지우고 나서야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행동임을 깨달았다. 이미 소리는 세탁소 벽에 스며들었고 여명의 고막을 통과했으며 세상 어떤 세제로도 표백되지 않을 자리에 얼룩을 남긴 뒤였다.
그로부터 이십 분쯤 흘렀다. 7은 자세를 세 번 바꿨고 담배를 물었다가 여기 실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도로 갑에 집어넣었으며 왼손으로 뒷목을 여덟 번 문질렀다. 해명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아는 모든 화법이 이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농담으로 뭉개면 인정하는 꼴이 되고 정색하고 설명하면 더 우스워진다. 선물을 검색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순간 이월 구일의 계획이 통째로 새어 나간다. 그는 계산을 하다가 계산을 그만뒀다. 그리고 바로 그 무방비한 순간에 여명이 다가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앞에 서서 접힌 쪽지 한 장과 비닐에 든 에그롤 과자 한 봉지를 작업대 위에 나란히 내려놓았다. 딱딱 소리가 두 번 났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갔다.
7은 쪽지를 펼쳤다. 여명 특유의 반듯하고 작은 글씨가 세 줄로 적혀 있었다. 아무리 쌓여 있어도 밖에서 그러면 안 된다.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니까 참지 말고, 대신 혼자 있을 때 건전하게 해결해라. 밥은 먹고 해라. 마지막 줄 아래에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고 그 화살표는 에그롤 봉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7은 그 종이를 든 채로 삼십 초쯤 완전히 정지했다. 세탁기가 탈수 단계로 넘어가며 굉음을 냈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목덜미부터 시작된 열이 화상 자국을 타고 올라와 귓바퀴 끝에서 터졌다. 얼굴이 붉어지는 감각을 그는 십 년 넘게 잊고 살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종류로 붉어져 본 적이 있었던가.
세탁기가 탈수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한 번 몸을 떨었다. 그 진동이 바닥을 타고 의자 다리까지 올라왔고 7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쪽지를 접었다. 접었다가 펼쳤다. 다시 접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미지근해질 때까지 그 짓을 반복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정교한 변론이 스무 개쯤 만들어졌다가 전부 폐기되었다. 선물을 찾고 있었다고 말할 것. 아니, 그러면 이월 구일이 새어 나간다. 광고를 잘못 눌렀다고 말할 것. 그건 세상 모든 남자가 하는 변명이고 신빙성이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그러면 저 쪽지의 내용을 전부 수긍하는 셈이 된다. 밥은 먹고 하라는 문장까지 통째로. 그는 에그롤 봉지를 손끝으로 밀었다가 도로 당겼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부끄러울 만큼 컸다.
안쪽 작업대에서는 재봉틀이 규칙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여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밑단을 접어 박고 있었고 그 등이 너무 태연해서 오히려 잔인했다. 7은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이 여자는 지금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한 것인가. 둘 중 무엇이 더 견디기 힘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카드판에서라면 상대의 손목 각도만 봐도 블러프를 읽어냈다. 그런데 저 여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결국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리 하나가 바닥을 긁으며 짧은 비명을 냈다. 재봉틀 소리가 잠깐 멈췄다가 다시 이어졌다. 그 잠깐의 정지가 그를 도망치게 만들었다면 그는 평생 그 골목을 다시 오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는 도망치는 데 소질이 없는 인간이었다.
⋯⋯我要澄清一件事。(⋯⋯한 가지 해명해야겠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헛기침을 하고 다시 시작했다. 여명의 등 뒤 한 걸음 반쯤 되는 자리에 서서, 손에 든 쪽지를 어정쩡하게 흔들면서. 십 년 동안 협상 테이블에서 국가 단위의 상대와 마주 앉아 값을 흥정했던 입이 지금은 첫 문장조차 제대로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화상 자국이 있는 오른쪽 목덜미가 유난히 뜨거웠다. 그쪽 피부는 신경이 죽어서 감각이 둔한 자리인데도 그랬다.
我係搵緊嘢。真係搵緊嘢。個廣告自己彈出嚟㗎,我隻手指⋯⋯(뭘 찾고 있었어. 진짜로 찾고 있었다고. 광고가 지 혼자 튀어나온 거야, 내 손가락이⋯⋯)
재봉틀이 멈췄다. 여명이 실을 끊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검은 눈이 정면으로 그를 담았을 때 7은 자기 문장의 나머지 절반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얼굴을 한 번, 손에 들린 쪽지를 한 번 보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하게, 정말이지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인지 그런 걸로 해두자는 뜻인지 알 수 없는 끄덕임이었다. 7은 그 순간 자신이 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고, 지는 판에서 판돈을 더 올리는 것은 도박꾼의 오래된 나쁜 버릇이었다.
你唔信我。(너 나 안 믿잖아.)
그는 쪽지를 작업대 위에 탁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후회했다. 소리가 너무 컸고 동작이 너무 컸으며 무엇보다 그것은 억울한 사람의 몸짓이 아니라 찔린 사람의 몸짓이었다. 여명이 손을 뻗어 그 쪽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반듯하게 접어 그의 셔츠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손끝이 천을 통해 흉골을 아주 잠깐 눌렀고 그 압력이 심장 위치를 정확히 짚었다. 7은 숨을 삼켰다. 삼십이 년 동안 이 몸에 총알이 박히고 불이 붙고 칼이 지나갔지만, 얇은 종이 한 장이 주머니 속에서 만들어내는 무게만큼 그를 무력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완전히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명은 손을 거두고 다시 재봉틀 앞으로 돌아가 앉았다. 등을 보인 채, 아주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놀리는 기색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였고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다. 밥은 먹었느냐고. 7은 그 질문의 앞뒤 맥락을 이해하는 데 삼 초가 걸렸고 이해한 뒤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웃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세탁기가 새 세탁물을 받아 다시 돌기 시작했다. 골목 밖에서 자전거 벨이 두 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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