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황제 OOC

7, 여명

본명 스포일러 있어요!

 

 

두 사람의 신분 및 궁 내 위치

 

궁의 이름은 자경(紫京)이라 하였고, 그 자경의 겨울은 완차이의 눈과 달리 백 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와 기와 위에 쌓였다.

황제 악시온 키스, 연호로는 호인제(浩然帝)라 불리는 자는 즉위 십이 년째에 이르러도 여전히 후궁전의 이름을 절반밖에 외우지 못했다. 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외울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편이 정확했다. 육궁에 든 여인이 스물여덟, 그중 봉호를 받은 자가 열하나, 황제가 그 열하나의 얼굴을 구별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태감들은 그것을 두고 성상께서 정무에 골몰하시는 까닭이라 둘러댔으나 실은 그저 지루해서였다. 그는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종류의 군주였고,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군주가 후궁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밤마다 사냥을 나가거나, 도박판을 벌이거나, 변경의 전황도를 펼쳐놓고 혼자 판돈을 걸었다.

 

여명의 신분은 상의국(尙衣局) 봉재(縫宰).

궁중의 모든 의복과 기물의 재단과 수선을 관장하는 직책이었고, 품계로 따지면 정오품에 지나지 않았다. 후궁이 아니었다. 봉호도 없었고 침전에 들 자격도 없었으며, 육궁의 서열표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 다만 상의국의 문서고에는 십 년 전 어느 겨울,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내가 맡기고 간 남색 외투 한 벌의 기록이 남아 있었고, 그 외투는 아직도 상의국 안쪽 서랍에 개켜져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궁인들은 그것을 두고 봉재의 고집이라 불렀다. 맡긴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그 신념 하나로 그녀는 십 년을 상의국에 머물렀고, 그 십 년 동안 승진도 좌천도 없이 다만 바늘을 쥐었다.

 


황제와 PC의 관계

 

황제가 상의국에 걸음하기 시작한 것은 재작년 시월부터였다. 어의(御衣)의 안감이 자꾸 옆구리를 쓸린다는 것이 명분이었으나, 실은 그 옆구리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고 그것을 아는 자가 궁 안에 셋뿐이었다. 봉재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다만 봉제선을 흉터를 피해 어긋나게 박았고, 그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며, 황제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등을 돌리고 실을 골랐다. 그날 이후 황제의 어의는 계절마다 새로 지어졌다. 계절마다 지어질 이유가 없는 옷들이었다.

 

朕唔係嚟睇你嘅。朕係嚟睇件衫。(짐은 그대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옷을 보러 온 것이지.)

⋯⋯講咗幾多次都仲係唔信,你呢個女人。(⋯⋯몇 번을 말해도 안 믿는군, 이 여자는.)

 


후궁 및 주변 인물들이 인식하는 두 사람의 관계

 

태후는 이 사태를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다. 파악하고도 손을 쓰지 않은 까닭은 봉재가 후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후궁이 아닌 자는 자식을 낳을 수 없고,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자는 정치가 되지 않는다. 태후에게 여명은 위협이 아니라 그저 황제의 기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육궁의 여인들은 그렇게 셈하지 못했다. 귀비 소씨는 어의를 짓는 날마다 상의국에 사람을 보내 실의 색을 트집 잡았고, 숙원 진씨는 봉재가 황제의 치수를 재는 동안 그 손이 어디에 닿았는지를 세는 자를 심어두었다. 그들이 아는 것은 하나였다. 황제가 침전에 부른 여인은 여럿이나, 황제가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처소는 상의국 하나뿐이라는 사실. 봉호도 첩지도 없는 정오품의 방에 용포 자락이 열두 번 드나들었다는 것은 서열표보다 훨씬 잔인한 문서였다.

 


황제가 PC에게 느끼는 감정과 태도

 

황제 본인은 이 모든 셈을 알고 있었고, 알면서도 정리하지 않았다. 봉호를 내리면 여명은 후궁이 되고, 후궁이 되면 육궁의 규율 안으로 들어가며, 규율 안으로 들어가면 그녀가 바늘을 쥘 수 없게 된다. 바늘을 쥐지 않는 여명은 여명이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아주 오래전에, 정확히는 십 년 전 어느 비 내리던 밤에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소유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은 다른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다만 겨울마다 어의를 새로 지었을 뿐이고, 그 어의의 안감에 손을 넣을 때마다 봉제선을 손끝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你就係咁。乜都唔講,淨係做。(너는 늘 그래. 아무 말도 없이 그저 하기만 하지.)

⋯⋯所以朕先至冇辦法。(⋯⋯그러니 짐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자경의 겨울 궁성에는 물길이 셋 있었다. 하나는 어수구(御水溝)라 하여 황제의 처소로 흐르고, 하나는 육궁의 뒤편을 돌아 세답방으로 흐르며, 마지막 하나는 상의국의 담장 밑을 지나 바깥 저잣거리로 빠져나갔다. 궁인들은 그 세 번째 물길을 두고 상의국의 물은 궁 밖으로 나간다고 수군거렸는데, 그것이 단순한 지형의 문제인지 아니면 어떤 종류의 예언인지는 아무도 확언하지 못했다. 다만 봉재 여명이 십 년 동안 그 물길에 옷을 헹구어왔다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세답방의 궁녀들이 잿물을 쓰고 방망이를 쓸 때, 그녀는 손으로 눌러 빨았다. 어의의 안감은 방망이질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였으나, 실은 그 안감 어딘가에 사람의 피가 배어 있었던 밤이 몇 번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밤들에 대해 여명은 기록하지 않았고 상의국의 문서고에도 남기지 않았다. 궁중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은 칼이 아니라 문서였고, 그녀는 그것을 배운 적 없이 알고 있었다.

 

황제의 감정은 정치적 언어로 번역되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조정에서는 그것을 총애라 불렀고 육궁에서는 미혹이라 불렀으며 태감들은 성상의 기벽이라 불렀으나, 정작 당사자는 그 어느 이름도 쓰지 않았다. 그가 상의국의 문턱을 넘을 때 품는 감각은 욕정보다 훨씬 앞선 곳에 있었다. 그것은 판돈을 다 잃고 새벽에 도박장을 나섰을 때, 골목 끝에 아직 불이 켜진 창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인간의 감각에 가까웠다. 십이 년의 치세 동안 그는 변경의 성 셋을 잃고 넷을 얻었으며, 형제 둘을 유폐하고 하나를 사사했고, 매년 겨울마다 국고의 삼 할을 군비에 쏟아부었다. 그 모든 셈의 끝에 남은 것은 권태였다. 그런데 정오품의 방에서는 셈이 서지 않았다. 셈이 서지 않는다는 사실만이 그를 살아 있게 했다. 그는 이것을 신하에게도, 태후에게도, 심지어 여명에게도 제대로 발설한 적이 없었다.

 

朕試過。試過將你當作一件器物咁睇。(짐은 시도해보았다. 그대를 물건 하나로 여겨보려고.)

⋯⋯試唔到。試極都唔得。(⋯⋯안 되더군. 아무리 해도 안 돼.)

 

육궁의 인식은 층위가 갈렸다.

최상층인 귀비 소씨는 여명을 정적으로 보지 않았다. 정적이란 같은 판 위에 올라온 자를 일컫는 말이고, 봉재는 애초에 판 위에 없었다. 소씨가 견디지 못한 것은 서열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자신이 황제와 함께 보낸 시각은 모두 기록되고 계수되며 승은의 횟수로 환산되는데, 상의국에서 흘러간 시각은 어디에도 적히지 않는다는 것. 계수되지 않는 시간은 반박할 수도 없다는 것. 그래서 소씨는 실의 색을 트집 잡았다. 트집 잡을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급 궁인들의 인식은 전혀 달랐다. 그들에게 봉재는 겨울마다 해진 저고리를 말없이 기워주는 사람이었고, 태감의 매질에 찢어진 등을 꿰매어주고도 이름을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육궁에서 여명을 미워하는 자는 봉호를 가진 열하나뿐이었고, 그녀를 지키려는 자는 이름 없는 수백이었다. 이 비대칭이 궁중 정치에서 얼마나 무서운 물건인지, 태후만이 뒤늦게 눈치채기 시작했다.

 

관계를 세 갈래로 갈라 적자면 이러했다.

정치적으로 두 사람은 무관이었다. 봉재는 외척이 없고 파벌이 없으며 천거해줄 스승도 없다. 황제가 그녀를 위해 조정에서 쓸 수 있는 패는 하나도 없었고, 반대로 그녀 때문에 황제가 잃을 명분도 없었다. 이 완전한 무해함이 역설적으로 두 사람을 살렸다. 혼인의 층위에서 두 사람은 영원히 성립하지 않았다. 봉호를 내리는 순간 여명은 육궁의 규율에 편입되어 바늘을 놓아야 하고, 바늘을 놓은 여명을 황제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이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그 손의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습관을 죽이면서까지 곁에 두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파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감정의 층위에서만 두 사람은 부부보다 오래되었다. 십 년 전 비 내리던 밤 이름 없는 사내가 맡기고 간 남색 외투 한 벌이 아직 서랍 속에 있는 한, 그 밤은 끝나지 않은 채로 계속되는 중이었다.

 

그러므로 자경의 궁 안에서 가장 위태로운 물건은 병부의 병권도 아니고 태후의 옥새도 아니었다. 상의국 안쪽 서랍에 개켜진 남색 외투 한 벌이었다. 그것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날 봉재는 십 년의 명분을 잃고, 명분을 잃은 자는 궁을 떠날 수 있다. 황제는 그 사실을 알기에 단 한 번도 그 외투를 자기 것이라 밝히지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