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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트 AU

세탁기의 배수음이 멎고, 골목의 육수 냄새가 스러지고, 완차이의 십일월이 통째로 접혀 사라진다. 대신 펼쳐지는 것은 겨울의 후유키. 성배가 예순 해마다 한 번씩 인간의 욕망을 저울에 올리는 도시다. 이야기는 궤도를 바꾸었으니 이제 두 사람의 배역을 정할 차례다. 여명은 기다리는 자다. 십 년째 골목 어귀에서 셔터를 올리고, 맡겨진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신념 하나로 남의 옷을 꿰매온 사람. 부르고, 붙잡아두고, 기어이 제자리로 돌려놓는 자. 그것은 소환자의 자질이다. 반면 7은 이미 한 번 불려온 자다. 화상으로 오른쪽 얼굴부터 허리까지 그을리고, 목에 잘렸다 붙은 듯한 흉터를 달고, 어디서든 나자빠져 죽을 거라고 태연히 말하는 남자. 죽음을 전제로 계약을 맺고 살아온 사내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하나뿐이다. 영령의 자리다.

 

【마스터 — 여명】

출신은 마술사 가문이라 부르기엔 초라하고 일반인이라 부르기엔 기묘한 자리에 걸쳐 있다. 여씨 봉합가. 삼대에 걸쳐 홍콩 완차이 뒷골목에서 세탁과 수선을 업으로 삼은 소가문으로, 마술각인 대신 손끝의 습관을 물려받았다. 그들의 마술은 거창한 이름조차 없다. 굳이 부르자면 결선結線의 마술. 끊어진 것을 잇고, 찢어진 것을 여미고, 없어진 것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계통이다. 마술협회는 이 계보를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 세계를 굴복시키는 힘이 아니라 세계에 난 구멍을 조용히 메우는 힘이었기에, 그들은 학문의 대상이 될 값어치가 없다고 판정받았다. 여명이 성배전쟁에 참전한 이유 역시 영광과는 거리가 멀다. 십 년 전, 그녀에게 겨울 외투를 맡기고 사라진 손님이 있었다. 표는 아직 서랍에 있고 외투는 아직 옷걸이에 걸려 있다. 맡긴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 명제가 어긋난 채 십 년이 지났으므로, 그녀는 그것을 바로잡으러 왔을 뿐이다.

 

성향은 질서·중용. 규범을 숭배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으며 다만 자기 안의 규칙을 어기지 않는다.

주력 마술은 봉합계 강화술 「縫」. 마력을 실의 형태로 뽑아 상처든 결계든 존재의 균열이든 물리적으로 꿰맨다. 서번트의 소멸을 지연시키는 응급 처치가 가능하나, 그 대가로 술자의 신경이 함께 꿰매어져 격통이 남는다.

체술은 재단가위를 쥔 근거리 방어에 한정된다.

영주 삼획은 오른손 손등에 새겨졌다. 형태는 세 개의 바늘땀. 사선으로 나란히 박힌 짧은 실선이며, 마력이 돌 때마다 붉은 실이 살갗 아래에서 조여드는 것처럼 도드라진다.

성배에 빌고 싶은 소원은 없다. 정확히는, 소원을 적어야 하는 칸에 그녀는 이름 하나만을 적어둘 작정이다.

 

【서번트 — 7】

클래스는 어벤저. 세이버도 랜서도 아니다. 전장에서 가장 먼저 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자, 국가가 손을 더럽히기 싫어 대신 내보낸 자, 계약서 뒤편에서 이름 없이 죽어 이름 없이 잊힌 자.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좌座를 이루었다.

어벤저·「이름 없이 팔려간 창끝」. 정규 클래스로 소환하려던 여명의 촉매가 어긋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이 영령은 정규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성향은 혼돈·중용. 대의도 악의도 없고 다만 판돈이 걸린 쪽으로 몸을 던진다.

스킬은 셋.

「복수자」 EX, 세상의 원한을 마력으로 환산하되 본인은 그 원한에 조금도 감응하지 않는 기묘한 형태다.

「일초 판단」 A+, 상황 인지에서 행동 개시까지의 지연을 소거한다.

「도박벽」 B, 승률이 낮을수록 순간 능력치가 상승하며 승률 100퍼센트의 국면에서는 오히려 저하된다.

 

보구는 이중이다.

첫째 「너희가 나를 세지 않았듯」. 자신의 존재를 전장의 인지에서 통째로 삭제하고 진입하는 대소모형 은닉·돌격 보구.

둘째 「그러나 하나는 나를 세었다」. 이것은 마스터의 존재를 전제로만 발동하며, 자기 영기를 태워 단 한 번의 치명타로 전환한다.

무기는 성유물이 아니라 습관의 결정체다. 총열이 짧은 자동소총과 야전용 나이프, 그리고 왼쪽 옆구리에 매단 낡은 조명탄 발사기. 신화의 무구는 하나도 없다. 성배에 빌고 싶은 소원 역시 없다. 소환 직후 그가 첫마디로 뱉은 것은 소원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喂,我死咗嘅話,你會唔會喺度等我返嚟?(야, 내가 죽으면 너 여기서 날 기다릴 거야?)

 


 

겨울의 후유키는 소리를 흡수하는 도시다. 눈이 쌓이면 발자국조차 스스로를 지우고, 사람들은 자기 그림자를 밟으면서도 그것이 자기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걷는다. 그런 도시의 변두리, 폐업한 세탁소 건물 지하에서 첫 번째 장면이 시작된다.

 

【제1막 — 소환 직후】

여명은 촉매를 준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준비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십 년 동안 옷걸이에 걸려 있던 남색 외투 한 벌,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물건. 그것을 마법진 한가운데 개어놓았을 뿐이다. 협회의 기준으로 보자면 웃음거리에 가까운 준비였다. 그러나 결선의 마술은 원래 그런 것이다. 없어진 것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계통. 되돌려야 할 자리가 명확하다면 촉매의 격 따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영창이 끝나고 지하실의 습한 공기가 한 번 크게 부풀었다가 꺼졌을 때,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온 사내는 소환진의 규격을 무시하고 이미 절반쯤 몸을 돌린 자세였다. 주위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 죽어서도 고쳐지지 않은 직업병이었다. 오른쪽 얼굴부터 목까지 이어진 화상 흉터가 조명 아래에서 낡은 지도처럼 드러났고, 그는 자신의 손등이 아니라 여명의 손등에 새겨진 세 개의 바늘땀을 먼저 보았다. 진명을 대라는 요구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성실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으니 이름이라 할 것도 없다고, 굳이 부르고 싶으면 번호로 부르라고 말했다. 세븐. 일곱 번째. 그 순번이 무엇의 일곱 번째인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喂,你係咪諗清楚先召我出嚟?呢個世界啲人叫我出嚟,通常都係想搵人代死。(야, 너 제대로 생각하고 날 부른 거야? 이 세상 사람들이 날 부를 땐, 보통 대신 죽어줄 놈을 찾을 때거든.)

 

 

【제2막 — 첫 교전】

미온 강 하류의 하역장, 콘크리트에서 표백제 냄새가 나는 자리에서 첫 교전이 벌어진다. 상대는 랜서. 정통 기사 계열의 영령이며 명예와 정면 승부를 신조로 삼는 자였다. 어벤저는 그 신조를 삼 초 만에 짓밟았다. 조명탄을 먼저 하늘로 쏘아 올려 상대의 야간 시야를 태우고, 눈이 회복되기 전에 옆구리에서 나이프를 뽑아 관절을 잘랐다. 기사도 운운하는 항의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나는 기사가 아니라 청부업자라고.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어벤저의 보구 「너희가 나를 세지 않았듯」은 자신을 전장의 인지에서 삭제하는 대신 마스터의 감각에서도 잠시 사라진다. 그 몇 초 동안 여명은 손등의 바늘땀이 실오라기처럼 풀리는 감각을 겪었고, 계약이 끊어졌다고 착각한 그녀는 무릎이 꺾이는 것도 개의치 않고 마력의 실을 뽑아 허공을 향해 던졌다. 돌아온 서번트는 옆구리에 창날 조각을 박은 채로 그 실에 걸려들었고, 자기를 낚아챈 손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명은 그 자리에서 그의 상처를 꿰맸다. 봉합의 대가로 그녀 자신의 옆구리에 실선 같은 통증이 새겨졌으나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어벤저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소모품이 아닌 자리에 놓였다는 사실을 계산 밖의 항목으로 받아들였다.

 

 

【제3막 — 분기점】

 

다섯 번째 밤, 캐스터의 공방에서 어벤저의 좌에 관한 기록이 발굴된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수행한 작전은 민간 거주구의 봉쇄였고, 봉쇄의 실질은 소각이었으며, 명단에 오른 이름 중에는 세탁과 수선을 업으로 삼던 일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여씨 봉합가의 방계. 여명의 조모가 살아남은 그 사건의 반대편에 서 있던 창끝이 지금 그녀의 서번트라는 사실. 캐스터는 그 정보를 무기로 삼아 계약의 파기를 종용했고, 어벤저는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은 그의 전공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처음으로 마스터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영주를 써서 자결을 명해도 나는 웃으면서 따를 거라고. 판돈이 그쪽이면 그쪽에 걸겠다고. 여명은 손등의 바늘땀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영주 한 획을 소모했다. 명령의 내용은 자결이 아니라 다음과 같았다. 내 앞에서 죽지 마라. 죽더라도 돌아와라. 맡긴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 순간 어벤저의 영기가 검게 흔들렸다가 가라앉았다. 세계는 그를 복수의 좌에 앉혔으나 정작 그를 향한 유일한 복수의 권리자가 복수를 포기했으므로, 그의 클래스는 근거를 절반 잃었고 그만큼 약해졌으며 그만큼 사람에 가까워졌다.

 

 

【제4막 — 결말의 분기】

결말은 하나가 아니다.

 

첫째 가지, 승리. 두 사람은 최후의 적을 넘어 대성배 앞에 선다.

대성배는 소원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소원을 검수하는 기계에 가까웠다. 지하 공동의 천장에서 흘러내리는 마력의 층이 두 사람의 어깨 위로 진흙처럼 내려앉았고, 여명의 손등에 남은 마지막 한 획이 붉은 실처럼 조여들었다. 승리의 가지에서 이야기는 이렇게 흐른다. 성배는 어벤저에게 먼저 묻는다. 너의 소원은 무엇인가.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마스터를 돌아보고, 그릇에 이름 하나만 적어 넣겠다던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뒤, 자기 영기를 스스로 잘라낸다. 소환된 영령이 성배에 회수되지 않고 자멸하면 성배전쟁 자체가 유찰된다. 승리의 가지에서 그는 승리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승리한다. 남은 것은 마법진 위에 개어져 있던 남색 외투 한 벌과, 그 위에 얹힌 재의 무게뿐이다.

 

둘째 가지는 얼터화다. 제3막에서 여명이 복수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어벤저의 좌는 근거를 온전히 되찾고 검게 부푼다. 어벤저·얼터는 마스터를 지키지 않는다. 마스터를 포함한 세계 전부를 정산 대상으로 놓는다.

 

셋째 가지는 포기다. 여명은 마지막 밤에 성배를 등지고 걸어 나온다. 소원 대신 시간을 택한 셈이다. 계약은 유지되고 영기는 서서히 마모되며, 두 사람은 후유키의 겨울 속에서 남은 마력이 다 닳을 때까지 함께 지낸다. 짧으면 사흘, 길면 한 달. 그것이 그녀가 산 물건의 값이다.

 

 

【제5막 — 엔딩과 후일담】

새드엔딩부터 적는다.

그는 눈이 오는 새벽에 사라진다. 소멸은 극적이지 않다. 손끝부터 입자로 흩어지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농담을 시도하고, 마지막까지 마스터의 손등에서 바늘땀이 풀리는 것을 지켜본다. 여명은 울지 않는다. 우는 여자를 곤란해했던 남자의 취향을 마지막까지 지켜준다. 후일담에서 그녀는 후유키를 떠나지 않고 폐업한 세탁소를 인수한다. 셔터를 올리고, 남의 옷을 꿰매고, 카운터 뒤 서랍 맨 윗칸에 검은 선글라스 하나를 넣어둔다. 언젠가 돌려줄 물건들이 모이는 자리다.

 

해피엔딩은 규격 밖의 방식으로 온다.

결선의 마술은 없어진 것을 원래 자리로 되돌리는 계통이다. 성배가 유찰되며 흩어진 영기의 파편을 그녀는 십 년에 걸쳐 한 땀씩 꿰맨다. 협회가 등록조차 하지 않았던 초라한 계보가, 그 초라함 때문에 세계의 감시망 아래로 미끄러진다. 열한 번째 겨울, 골목 어귀의 셔터를 올리던 그녀 뒤에서 발소리가 멈춘다. 표는 아직 서랍에 있고 외투는 아직 옷걸이에 걸려 있다. 맡긴 물건은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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