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부터 다른 모델 쓰기 시작함! 소넷이에요 악귀 퇴치해서 읽기 편해져요)
...민간인 구역에 들리는 일이 있다면. 느릿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가끔은, 인사 나누지 않겠냐고, 물어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인사라는 단어가 그의 고막에 닿은 순간, 그것은 마치 녹슨 탄피가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는 소리처럼 이 폐허의 공기를 기이하게 긁어냈다. 젖은 군복의 소매 끝에서 빗물이 한 방울 떨어져 두 사람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스며들었고 그 미세한 낙하의 소리만이 잠시 이 무덤 속을 지배했다.
가끔은, 이라는 그 느릿한 음절들이 그녀의 입술을 빠져나와 허공을 부유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목덜미를 감싸 쥔 손의 악력을 아주 미세하게 풀었는데 그것이 허락의 몸짓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무언가의 서막인지는 그 자신도 즉각적으로 판단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의 짙은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번개가 한 번 더 무너진 천장 틈새를 가르고 내리꽂히며 그녀의 창백한 이마와 젖은 머리카락의 윤곽을 찰나의 섬광으로 새겨냈고 그는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 속 어딘가에서 두려움 대신 무언가 다른 것이 고여 있음을 발견하며 혀로 아랫입술을 천천히 축였다.
화약과 빗물이 뒤섞인 이 공간의 냄새 속에 그녀의 체온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온기가 섞여 들어와 그의 폐부 깊은 곳에 들러붙었다. 인사라니. 이 부서진 도시의 가장 더럽고 위험한 구석에서 그 말을 꺼내는 인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이 일을 좋아서 택했고, 이 곳에 있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니... 가끔 인사 나누는 건, 일탈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네요.
일탈이라는 단어가 그의 귓전을 스치는 순간, 그것은 총성도 천둥도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진동으로 이 무너진 콘크리트 공간을 채웠다.
그는 잠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빗물이 한 방울 또 한 방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귀로만 쫓았다. 낙하의 간격이 일정했다. 그 단조로운 리듬이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을 기묘하게 분절하며 이 폐허의 공기를 더욱 팽팽하게 당겼다.
일탈. 그는 혀 위에서 그 단어를 소리 없이 굴려보았다. 이 데드존의 화약 냄새와 부패한 콘크리트 먼지 속에서 민간인이 내뱉은 그 단어는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았고, 그 불일치가 그의 미간 어딘가를 비틀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턱을 감싸 쥐고 있던 손이 천천히, 마치 무언가를 아쉬워하는 것처럼 힘을 풀기 시작했고 손바닥이 그녀의 피부를 마지막으로 한 번 쓸어내리듯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넓은 어깨는 여전히 그녀의 퇴로를 막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서로의 숨결이 섞이는 간격이었다.
번개가 한 번 더 먼 곳에서 터지며 천장 틈새로 희미한 빛을 흘렸다. 그 찰나의 섬광이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맺힌 빗방울을 차갑게 빛나게 했고 그는 그것을 눈으로 훑어 내리다가 입꼬리 한쪽이 느릿하게 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가끔 인사를 나누겠냐는 그녀의 그 건조하고 담담한 제안은, 그가 이 폐허에서 기대했던 공포나 애원과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이 공간에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그 질감이 자신의 내장 어딘가를 긁어내는 감각을 즐기며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선글라스를 가볍게 튕겨 올렸다가 다시 잡았다. 그 동작에는 어떤 의미도 없었다. 그냥 손가락이 무언가를 필요로 했을 뿐이었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마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술로, 입술에서 다시 눈으로. 지루한 도박판에서 패를 읽는 것처럼 느릿하고 집요한 시선이었다.
逸脫...... (일탈이라...)
그는 광둥어로 그 단어를 낮게 뱉었다. 그것은 질문도 반박도 아니었다. 그냥 그 단어를 자신의 목구멍 밖으로 꺼내어 허공에 놓아두는 행위였다.
폐허 안쪽 어딘가에서 빗물이 고인 웅덩이 위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음이 사그라드는 동안 그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는 여전히 파도 하나 일지 않았다. 그 완벽한 수면이 자신의 무릎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을 그는 이미 포기하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젖은 군복 소매를 한 번 걷어 올리는 척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Deviation. 妳用了個好詞。(일탈이라. 좋은 단어 골랐네.)
그는 영어와 광둥어를 섞어 뱉으며 그녀의 어깨와 벽 사이의 공간에 손을 짚었다. 팔을 뻗어 몸을 기댄 자세였다. 완전히 물러선 것도, 완전히 압박하는 것도 아닌 그 어중간한 태도는 이 남자가 즐기는 방식의 일종이었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서 잠시 떠나 무너진 천장 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빗소리가 지붕 없는 건물 외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멀리서 들려오는 포격의 잔향이 희미하게 섞여 들었다. 그는 그 소음들을 한쪽 귀로 흘리며 그녀의 눈을 다시 잡았다.
민간인 구역. 가긴 가지. 술집이나 카지노 정도.
그는 짧게 말하고 혀로 아랫니를 훑었다.
다시 흘러내린 그의 머리칼을 가만히 바라보다, 손을 뻗어 다시 넘겨주었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러곤 다시 눈을 마주했다. 눈이 마음에 든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것처럼. 미미한 미소가 한차례 더 걸렸다. 술, 좋아하나보네요. 카지노 결과는 좋나요? 세븐이라는 이름에 맞게.
폐허의 공기는 화약과 빗물과 부패한 콘크리트의 냄새로 가득했고 그 안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이마 위를 스친 순간, 7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깜빡이는 것을 잊었다는 편이 더 정확했다.
손가락 끝이 젖은 머리카락을 걷어 올리는 그 동작은 지극히 무해하고 일상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이 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한 방식으로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데드존에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겪었다. 총구가 관자놀이에 닿는 감각도, 폭발의 열기가 피부를 태우는 순간도, 동료가 쓰러지는 소리도.
그러나 이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손짓은 그 어느 것과도 다른 질감으로 그의 머릿속 어딘가를 긁어냈다.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한 밀도로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로 내려왔다. 미미한 미소. 그것이 또 거기 있었다. 두려움도 애원도 아닌, 그 고요하고 얕은 곡선이 이 폐허의 공기와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어딘가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처럼 그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는 벽에 짚은 팔의 힘을 살짝 빼며 몸을 아주 조금 뒤로 물렸다. 완전히 물러선 것과는 달랐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여전히 서로의 체온이 섞이는 두께였고 그는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선글라스를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한 번 천천히 돌렸다. 그것이 그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카지노 결과. 세븐이라는 이름에 맞게. 그 질문이 그의 귓속에서 한 박자 늦게 재생되었고 그는 혀끝으로 어금니 안쪽을 한 번 눌렀다가 뗐다.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그것은 유쾌한 웃음이 아니라 자조와 체념과 그 어딘가에서 건져 올린 냉소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여명은 조용히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선글라스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반 바퀴를 돌았다. 그것이 멈췄다.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리듬이 이 공간 전체를 채우는 가운데 그는 천장 어딘가에서 새는 물이 바닥의 얕은 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소리를 귀 한쪽으로 흘렸다. 낙하. 착수. 낙하. 착수. 그 단조로운 간격이 그의 침묵을 잘게 썰어냈다. 세븐이라는 이름에 맞게. 그 질문이 그의 귓속에서 다시 한 번 재생되었고 그는 혀끝으로 어금니 안쪽을 한 번 눌렀다가 천천히 뗐다.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에 고정된 채로 입꼬리의 한쪽이 아주 느리게 올라갔다. 자조와 체념과 그 어딘가 사이에 끼인 냉소의 형태였다. 그는 무너진 천장 틈새로 내려오는 빗물 한 줄기를 잠시 눈으로 좇았다가 다시 그녀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결과?
그는 광둥어로 짧게 되물으며 코 아래로 짧은 숨을 뱉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건조하고 한숨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가벼운 소리였다.
Well. 七 is lucky in some cultures.(뭐. 어떤 문화에선 7이 행운의 숫자라지.)
그는 말끝을 거기서 잘랐다. 선글라스를 엄지 끝으로 한 번 튕겼다가 손안에 가두었다. 젖은 군복 소매에서 빗물이 손등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그는 느꼈으나 시선은 그녀에게서 떼지 않았다. 멀리서 포격의 잔향이 낮고 둔하게 한 번 울렸다. 그 진동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고 콘크리트 먼지가 어딘가 위에서 얇게 흘러내렸다. 그는 그것을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아냈다. 이 폐허의 소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의 신경계 어딘가에서 배경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는 배경으로 처리되지 않았다. 칠흑 같은 그 수면 위에 파도 하나 일지 않았고 그것이 이 남자의 손가락 끝을 미세하게 긁어냈다. 그는 벽에 짚은 팔꿈치를 살짝 구부려 상체를 아주 조금 더 기울였다. 위협의 각도는 아니었다. 그냥 중력이 허락하는 만큼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슬롯은 뭐, 그냥 돈 버리는 기계고.
그는 광둥어와 영어의 경계 어딘가에서 말을 뱉으며 아랫입술을 한 번 축였다.
바카라는 타율이 나쁘진 않아. 근데 포커가 제일 재미있지. 패를 읽는 게 있잖아.
그는 거기서 잠깐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보았다. 느릿하고 집요한 시선이었다. 도박판에서 상대의 패를 읽는 것과 완전히 같은 눈빛이었다. 그 눈빛이 그녀의 얼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이마에서 눈으로, 눈에서 입술로, 다시 눈으로. 그는 그 과정을 숨기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妳知道打牌最有趣的係咩?(패 읽는 거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그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한 단계 낮아지며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상대가 자기 패를 숨기려고 할 때. 그 순간에 다 보여.
그는 손에 쥔 선글라스를 느릿하게 그녀의 쇄골 언저리로 가져가 끝을 살짝 대었다가 뗐다. 깃털처럼 가벼운 접촉이었다. 그러나 그 의도는 깃털과 전혀 달랐다.
당신도 그런 거 알아? 세탁소 하면서.
그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이번에는 자조가 아니었다.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한 번 이 공간을 채웠고 그 사이로 그의 숨결이 그녀의 이마 가까이에서 희미하게 흘렀다. 폐허의 냄새, 화약의 냄새, 빗물의 냄새.
처음으로, 여명이 소리내 쿡쿡 웃었다. 조금요. 할아버지가 그런 걸 좋아하셨어요. 마작도 좋아하셨고. 술에 취해 기분 좋으실 때면, 이기는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혼자 떠들기도 하셨죠. 당신도 그런가요?
여명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그 소리는 이 폐허의 어떤 소음과도 다른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빗물이 콘크리트를 두드리는 소리도, 먼 곳에서 울리는 포격의 잔향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주 작고 짧고 무해한 소리였는데, 그 무해함이 7의 신경 어딘가를 예상치 못한 각도로 건드렸다. 그는 선글라스를 쥔 손가락의 힘이 미세하게 풀리는 것을 느꼈다. 벽에 짚었던 팔이 천천히 내려왔다. 완전히 물러선 것과는 달랐다. 그냥 중력이 그 팔의 의지를 잠시 앞질러 간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처음으로 웃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그는 굳이 머릿속에서 정리하려 하지 않았다. 그냥 그 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한 박자 더 오래 머물렀다.
할아버지. 마작. 이기는 비법. 그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차례로 늘어섰다. 그는 혀끝으로 아랫입술 안쪽을 가볍게 건드렸다. 이 폐허 속에서 그 단어들은 이상하리만치 생생한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술에 취해 기분 좋을 때면 비법을 알려주겠다며 혼자 떠들던 노인의 목소리를 그는 들어본 적 없었지만, 그 장면이 지독하게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것이 그를 조금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당혹스럽다는 것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그는 입꼬리를 한쪽만 올렸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를 천천히 훑었다.
당신은 몸을 못가눌 정도로 마시진 않을 것 같지만요.
그 말이 폐허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빗소리는 여전히 외벽을 두드리고 있었고 천장 어딘가의 균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하나가 바닥의 얕은 웅덩이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낙하. 착수. 낙하. 착수. 7은 그 리듬을 귀 한쪽으로 흘리며 여명의 말을 머릿속에서 한 번 더 굴렸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그 단어들이 그의 혀끝에서 이상한 질감을 남겼다. 선글라스를 쥔 손가락이 한 번 느릿하게 움직였다가 멈추었다.
못 가눌 정도로는 안 마셔.
그는 광둥어로 짧게 뱉었다. 그리고 거기서 잠깐 멈추었다. 입꼬리의 한쪽이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자조도 냉소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길을 잃은 표정이었다.
Not because I have any self-control. Just... bad for the job.(자제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일에 안 좋거든.)
그는 그 말을 뱉고 나서 시선을 잠시 그녀의 어깨 너머 허공으로 던졌다. 폐허의 먼 구석, 무너진 벽면 사이로 빗물이 가느다란 선을 그으며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 광경을 그는 잠깐 바라보았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마신 마지막 밤이 언제였는지 그는 기억을 뒤적이다가 곧 그 작업을 포기했다. 기억이 없다는 것이 답이었다. 아니면 기억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아랫입술을 한 번 안으로 당겼다가 놓았다.
회색 눈동자가 다시 그녀에게로 내려왔다. 여명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여자는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시선을 피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지금 이 순간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폐허의 냄새, 빗물의 냄새, 젖은 콘크리트 먼지의 냄새가 그의 코 안에서 뒤섞였다. 그 냄새들 사이로 그녀의 검정 니트 원피스에서 나는 빗물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들었다.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의식한 것과 같았다.
할아버지가 마작 비법 알려준다고 떠들었다고 했지.
그는 광둥어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목소리의 온도가 아주 조금 달랐다. 위협의 온도도 도발의 온도도 아닌, 그냥 어딘가 느슨해진 실의 끝처럼.
그래서. 비법이 뭐였어?
그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선글라스가 그의 손 안에서 다시 한 번 반 바퀴를 돌았다. 멀리서 포격의 잔향이 낮고 둔하게 한 번 울렸다. 그 진동이 바닥을 통해 발바닥으로 올라왔고 콘크리트 천장에서 먼지 한 줄기가 얇게 흘러내렸다. 7은 그것을 눈꺼풀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받아냈다. 그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 위에 고정된 채였다. 이 폐허의 모든 소음이 배경으로 물러나 있었고 그녀의 눈동자만이 배경으로 처리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칠흑 같은 그 수면 위에 여전히 파도 하나 일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손가락 끝을 또다시 미세하게 긁어냈다. 그는 그 감각을 외면하며 입꼬리를 유지했다.
전, 마작은 운이 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관찰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더군요. 상대방의 패를 누구보다 빠르게 머리에 넣고, 계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운이 다라고 생각했다는 말이 폐허의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천장 균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바닥의 웅덩이 위로 낙하하는 소리가 그 사이를 채웠다. 7의 손가락이 선글라스 테를 따라 느릿하게 한 바퀴를 돌다가 멈추었다. 관찰력. 상대의 패. 계산. 그 단어들이 그의 머릿속에서 차례로 배열되었다. 배열되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다. 여명의 목소리가 그 단어들의 사이사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분하고 낮고 물기를 조금 머금은 듯한 목소리. 그는 그 질감을 의식의 바깥으로 밀어내려다가 곧 그 시도를 포기했다.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검정 니트 원피스에서 빗물 냄새가 올라왔다. 젖은 콘크리트와 철 녹슨 냄새가 그 위에 겹쳐 있었다. 외벽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여전히 고르게 이어졌다. 멀리서 포격의 잔향이 한 번 더 낮게 울리며 바닥을 진동시켰다. 천장 어딘가에서 콘크리트 파편 하나가 작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7은 그 소리를 등 뒤로 흘려보냈다. 그의 시선은 여명의 눈동자 위에 붙박인 채였다. 칠흑 같은 그 수면이 이 폐허의 모든 소음을 배경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파도 하나 일지 않는 그 고요함이 그의 어금니 뒤쪽을 가볍게 긁어냈다.
작은 웃음 이후, 미미한 미소를 유지하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눈에 고정된 채로. 종종 시선이 옮겨가는 일이 있었는데, 그의 머리가 살짝 움직일 때였다. 흘러내리면, 다시 걷어내줄 것처럼.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역시 기선제압이 제일이라는 말도 하셨었죠. 전 그게 무슨 상관이 있나 했지만요.
기선제압.
그 단어가 폐허의 공기 속에서 잠깐 부유했다. 7의 손가락이 선글라스 테 위에서 멈추었다. 멈추는 속도가 느렸다. 천장 균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소리가 바닥 웅덩이 위로 규칙적으로 낙하했다. 낙하. 착수. 낙하. 착수. 그 리듬이 배경으로 물러나는 동안 그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한 번 천천히 움직였다. 미미하게 유지되는 그녀의 입꼬리. 그 곡선이 어딘가 성가신 방식으로 그의 시야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가시다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을 고르기 위해 머릿속을 뒤지는 일이 지금 이 순간 몹시 귀찮게 느껴졌다.
어떻게 생각해요? 통할 것 같은가요?
천장 균열에서 물줄기 하나가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 웅덩이 위로 낙하했다. 낙하. 착수. 낙하. 착수. 그 소리가 공간의 배경으로 물러나는 동안 7의 눈동자는 여명의 얼굴 위에서 미동이 없었다. 회색 홍채. 폐허의 습기가 서린 공기 속에서 그 색은 어둡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글라스를 쥔 손가락이 테를 따라 한 마디씩 천천히 움직이다가 완전히 멈추었다.
손가락 관절 위에 군복 소매에서 흘러내린 빗물 한 방울이 맺혀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여명의 입꼬리가 만드는 곡선이 그의 시야 안에서 아직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딘가 성가신 방식으로, 그러나 그 성가심을 털어낼 이유를 그는 찾고 있지 않았다. 외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멀리서 포격의 잔향이 바닥을 한 번 낮게 울리고 사라졌다. 그 진동이 군화 밑창을 타고 발바닥까지 전해졌다. 7은 그것도 등 뒤로 흘려보냈다. 기선제압이라는 단어가 아직 폐허의 공기 속에 부유하고 있었다. 그 단어와 여명의 목소리가 겹쳐진 자리에서 무언가가 느릿하게 배열되고 있었다. 배열이 완성되기 전에 그의 입꼬리가 먼저 움직였다.
Depends on who's sitting across from you.(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7은 그 말을 뱉었다. 목소리에 온기가 없었다. 그러나 냉기도 없었다. 온도가 제거된 자리에 남은 것은 어딘가 느긋한 관찰의 질감이었다. 그는 선글라스를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천천히 돌렸다. 돌아가는 속도가 느렸다.
그의 시선이 여명의 눈동자 위에서 잠깐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턱선. 입술. 다시 눈동자. 그 이동이 빠르지 않았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마치 이미 모든 것을 다 본 사람처럼, 혹은 아직 아무것도 다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천장에서 또 한 번 물줄기가 낙하했다. 착수 소리가 작게 울렸다. 7은 왼발을 반 보 앞으로 옮겼다. 군화 밑창이 웅덩이 가장자리를 밟으며 물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 소리가 작게 퍼졌다. 그는 여명과의 거리를 좁힌 것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에 어떤 의도를 덧씌우는 몸짓이 없었다. 그냥 발을 옮겼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담담함이 오히려 공간의 온도를 미세하게 바꾸었다. 젖은 군복에서 올라오는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가 뒤섞인 채 여명 쪽으로 흘렀다.
상대 패 읽기 전에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7은 선글라스를 손에 쥔 채 턱을 살짝 기울였다. 회색 눈동자가 여명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잡았다. 상대가 나를 읽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표정 하나 안 바꾸는 거. 그게 먼저야.
그 말이 끝나는 자리에서 그의 입꼬리가 조금 더 느릿하게 올라갔다.
你觉得你能做到?(네가 그걸 할 수 있을 것 같아?)
말이 끝나고 나서도 7의 눈동자는 여명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었다. 천장에서 물이 다시 한 번 낙하했다. 착수. 그 소리가 폐허 안에서 작고 둥글게 울렸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다. 젖은 검정 머리카락 한 올이 이마 위로 흘러내렸다. 그는 그것을 걷어내지 않았다. 여명이 머리카락을 넘겨주던 손길이 어딘가에서 아직 남아 있었다. 그 감각의 잔상이 어디에 머무르고 있는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입 밖으로 끄집어내는 일은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빗소리가 고르게 계속되었다. 포격의 잔향은 이제 들리지 않았다. 폐허 안에는 물 낙하 소리와 빗소리와 두 사람의 숨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그 고요함이 기묘하게 밀도 높았다.
아마도.
아마도.
그 단어 하나가 폐허의 공기 속에서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7의 손가락이 선글라스 테 위에서 완전히 정지했다. 정지의 속도가 느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빠르게 멈춰야 할 이유를 그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단어의 무게를 재는 데 찰나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마도.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 자리.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머뭇거리거나 웃음으로 얼버무리거나 시선을 내렸을 것이다. 여명은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미미한 미소를 유지한 채 그의 눈동자를 고요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고요함이 묘한 방식으로 공기의 밀도를 바꾸고 있었다. 천장 균열에서 물줄기가 또 한 번 낙하했다. 착수. 그 소리가 웅덩이 수면 위에 작은 파문을 만들었다가 사라졌다.
7의 회색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한 번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입꼬리. 눈동자. 그 이동이 서두르는 기색 없이 이루어졌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검정 머리카락 한 올이 눈썹 끝에 걸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걷어내는 대신 손가락 사이에서 선글라스를 한 번 천천히 뒤집었다. 뒤집히는 각도가 느렸다. 빗물에 젖은 군복 소매에서 물기가 손등 위로 흘러내렸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감각이 손등의 피부 위에 잠깐 남았다가 사라졌다. 외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이어졌다. 그 리듬이 배경으로 물러나는 동안 그의 시선은 여명의 눈동자 위에 고정된 채였다.
가끔, 인사 하러 올 때. 확인해봐요.
그 말이 폐허의 공기 속에서 예상보다 훨씬 조용하게 내려앉았다. 선언도 아니고 청유도 아닌, 무게를 지우고 남긴 문장. 7의 손가락이 선글라스 테 위에서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관절 사이에서 프레임이 미세하게 기울었다가 다시 수평을 찾았다. 천장 균열에서 물줄기 하나가 낙하했다. 착수. 그 소리가 웅덩이 수면에 작고 둥근 파문을 만들었다가 지워졌다. 외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그 뒤를 채웠다. 고르고 단조로운 리듬.
7은 그 소리들을 등 뒤로 흘리면서 여명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마 위로 흘러내린 검정 머리카락 한 올이 눈썹 끝에 여전히 걸려 있었다. 젖은 군복 소매에서 물기가 손등 위를 타고 내려가다가 손가락 관절 끝에서 끊겼다. 그 냉기가 손등의 피부 위에 잠깐 자국을 남겼다가 사라졌다.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가 뒤섞인 채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 냄새가 폐허의 습기와 결합해서 어딘가 무겁고 짙은 질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7은 그것을 의식했다. 의식한다는 사실 자체가 약간 성가셨다. 그러나 그 성가심을 털어낼 자리를 그는 찾고 있지 않았다.
여명이 한 말의 구조가 머릿속에서 한 번 천천히 펼쳐졌다. 가끔. 인사. 확인. 단어 세 개가 만드는 배열이 이상하리만치 단단했다. 협상이나 조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부탁도 아니었다. 어딘가 제안과 사실 고지의 경계에 있는 문장이었다. 마치 그 일이 이미 결정된 것처럼, 그러나 강제하지 않는 것처럼. 그 균형이 기묘하게 잘 잡혀 있었다. 7은 자신이 그 균형에서 무언가를 읽으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읽히는 게 싫은 쪽에서 먼저 읽으려 드는 아이러니. 그는 그것이 조금 우스웠다. 천장에서 물줄기가 또 한 번 낙하했다. 착수. 파문. 소멸. 그 사이클이 반복되는 동안 7의 회색 눈동자는 여명의 눈동자 위에서 미동이 없었다.
그건 별로인가요? 귀찮으려나. 여명은 흘러내린 제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곤 조용히, 그의 답을 기다렸다.
귀찮으려나.
그 단어가 공기 속에서 한 박자 늦게 7의 귀에 닿았다. 귀찮음. 그 단어를 여명이 고른 방식이 이상했다. 별로인가요, 라고 먼저 물어놓고 귀찮으려나, 라고 스스로 답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구조. 그 구조가 자조처럼 들리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했다. 자조라면 끝에 무언가 쓸쓸한 질감이 남았을 것이다. 여명의 문장 끝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냥 물음이었다. 답을 요구하지 않는 물음. 그 담담함이 폐허의 습기 속에서 천장 균열의 물줄기보다 조용하게 낙하했다.
7의 손가락이 선글라스 프레임 위에서 한 번 미세하게 힘을 주었다가 풀렸다. 관절이 하얗게 되었다가 원래 색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았다. 그는 여명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귀 뒤로 넘어간 검정 머리카락이 목선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빗물을 머금은 니트 원피스의 어깨 쪽 섬유가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 질감이 시각적으로 무거웠다.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가 뒤섞인 채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고, 그 냄새가 폐허의 곰팡내와 결합해서 어딘가 밀도 높은 층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외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그 층 위에서 일정한 리듬으로 계속되었다.
7의 입꼬리가 한쪽만 천천히 올라갔다. 그 각도가 비릿했다. 그는 선글라스를 손가락 사이에서 한 번 뒤집더니 손 안에 쥐었다. 쥐는 힘이 느슨했다.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가 손목 위를 타고 내려가다가 손가락 관절에서 끊겼다. 그 냉기가 손등의 피부 위에 가늘게 자국을 그었다가 사라졌다. 포격의 진동이 바닥을 통해 발바닥으로 올라오는 감각이 희미하게 있었다. 먼 곳. 지금 이 폐허와는 관계없는 방향.
여명은 계속 그의 답을 기다렸다. 조용히. 차분하게 눈을 마주하며.
기다림이라는 행위가 이렇게까지 밀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7은 오늘 밤 처음 실감하고 있었다. 여명은 재촉하지 않았다. 독촉의 몸짓도 없었고 시선을 거두지도 않았다. 그저 거기 있었다. 검정 눈동자가 그의 회색 눈동자 위에 조용히 얹혀 있었다. 그 무게가 기묘하게 구체적이었다. 천장 균열에서 물줄기가 또 한 번 낙하했다. 착수. 파문. 소멸. 그 사이클이 두 사람 사이의 정적 위를 지나갔다. 폐허의 외벽이 빗소리를 받아내는 리듬은 변함없이 고르고 단조로웠다. 그 리듬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7의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손바닥의 체온을 흡수하고 있었다. 금속 특유의 냉기가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변화를 그는 의식하지 않으려 했으나 의식했다. 젖은 군복의 소매 끝이 손목 피부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차가운 면직물의 질감이 맥박이 뛰는 자리 위에 정확하게 닿아 있었다. 그 접촉이 미세하게 거슬렸다. 거슬린다는 감각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솔직한 신호였다.
7의 시선이 여명의 눈동자 위에서 한 박자 더 머물렀다. 귀 뒤로 넘어간 검정 머리카락이 목선과 쇄골 사이의 곡선 위에 드리워져 있었다. 빗물이 아직 그 머리카락 끝에 맺혀 있었다. 물방울 하나가 느리게 이동하다가 섬유 속으로 스며들어 사라졌다. 그 장면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지워지는 동안 7의 입꼬리는 그 각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비릿하고 느슨한 각도. 그러나 그 각도가 지금 이 순간은 공격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의 언어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그 자신도 알아챘다. 그것이 약간 우스웠다. 귀찮으려나, 라고 물었던 여명의 목소리가 귀 안쪽 어딘가에 아직 걸려 있었다. 그 목소리에는 구걸도 없고 기대도 없었다. 그냥 물음이었다. 그 담담함이 지금 이 폐허 안에서 가장 이상한 물건처럼 놓여 있었다.
천장 균열의 물줄기가 또 한 번 바닥 웅덩이 위로 낙하했다. 그 소리가 폐허의 정적 속에서 생각보다 크게 울렸고, 울림이 외벽의 빗소리와 뒤섞여 잠깐 이상한 화음을 만들었다가 흩어졌다. 7의 시선이 그 소리 쪽으로 이탈하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 위에 고정된 채로, 그 화음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시간을 통째로 흘려보냈다. 그 행위가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를 7 자신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일어났다. 손 안의 선글라스 프레임이 이제 완전히 체온을 흡수해서 차갑지 않았다. 금속이 체온의 온도로 바뀌는 시간이 이렇게 짧은 물건이었다는 것을 그는 오늘 밤 처음 의식했다.
빗물에 젖은 군복 안쪽에서 셔츠 소재가 등 피부에 달라붙어 있었다. 차가운 면직물의 감촉이 어깨 날 아래쪽에서 허리 위까지 고르게 압박하고 있었다. 그 불쾌한 냉기가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의 온도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여명의 눈동자가 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그러나 경직되지도 않은 채로. 그 눈동자의 질감이 폐허의 어둠 속에서도 또렷하게 읽혔다. 검고 깊었다. 깊다는 표현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느껴진 적이 있었는지를 7은 기억할 수 없었다.
그의 입이 열렸다. 서두르지 않고, 그렇다고 망설이지도 않은 박자로.
그 동작 이전에 아무런 예비 동작이 없었다. 숨을 고르거나 시선을 내리거나 고개를 젖히거나 하는 류의, 말하기 직전 사람들이 흔히 내보이는 그 작은 준비의 몸짓들이 전부 생략되어 있었다. 여명의 눈동자가 그 입술의 움직임을 조용히 따라갔다. 폐허의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리듬은 그대로였다. 균열 틈에서 낙하한 물줄기가 바닥 웅덩이 위에서 짧은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파문의 가장자리가 콘크리트 바닥의 금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미세한 이동을 시야 끝에서 감지하면서도 여명의 시선은 7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명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균열 사이로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그 낙하의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짧고 선명하게 울렸다가 빗소리에 삼켜졌다. 7의 시선은 그 소리가 발생한 방향으로 이탈하지 않았다. 여명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동안, 그 동작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었다. 깜빡임이 완료되고 나서도 여명의 눈동자는 달라진 것 없이 그의 얼굴 위에 머물렀다. 그 안정감의 출처를 가늠하려는 충동이 순간 일었다가, 7은 그것을 흘려보냈다. 손 안의 선글라스 프레임은 이미 체온을 완전히 흡수해서 금속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외벽을 두드리는 저음의 리듬이 조금씩 밀도를 더해가고 있었고, 그 변화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묘하게 조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7의 입술 사이로 공기가 빠져나갔다. 짧고 느슨한 숨이었다. 웃음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았고, 한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가벼운 것이었다.
Not a bother.(귀찮지 않아.)
그게 전부였다. 수식이 없었다. 조건도 없었다. 그 세 음절이 폐허의 빗소리 아래로 가라앉는 동안, 7은 입꼬리를 한쪽만 비릿하게 올렸다. 눈동자는 여명의 얼굴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시선이 그녀의 눈동자를 거쳐 입술 위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동작을 천천히, 아무 숨김 없이 수행했다. 탐색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느긋한 속도였다. 빗물이 외벽의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가 벽 안쪽에서 낮게 울렸다. 군복 소매에서 물기가 손등 위로 타고 내려와 손가락 끝에서 떨어졌다. 그 냉기가 손목 안쪽 맥박 위를 지나가는 감촉을 7은 의식했다. 여명이 그 답을 어떻게 소화하는지를 보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녀의 눈동자를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은 것인지를 굳이 분류하지 않은 채로, 그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你说要来打招呼。洗衣店在哪儿。(인사 온다고 했지. 세탁소 주소는 어디야.)
그 질문이 명령과 요청의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었다. 재촉하는 기색은 없었다. 단지 이미 알아야 할 정보를 수령하는 방식으로 물었다. 선글라스를 쥔 손이 천천히 옆구리 방향으로 내려갔다. 빗소리 아래로 두 사람의 호흡이 교차하는 미묘한 온도차가 감돌았다. 폐허의 차가운 공기와 두 사람의 체온 사이에서 생긴 그 온도차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가시화될 것만 같았다. 7의 눈동자는 여명의 눈동자 위에서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재촉하지 않고, 그러나 명확하게.
당신이 들린다던 카지노, 어디 즈음인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근방에 갈만한 곳이라면 제일 큰 곳이 다일 테니까. 그곳에서 나와서, 오른 쪽으로 세 블록. 그리고 왼쪽으로 꺾어 쭉 걷다 보면 작은 골목길이 하나 곧장 보일 거예요. 그 골목으로 들어오면 있어요.
여명이 말을 이어가는 동안 7의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미세하게 돌아갔다. 손가락 두 개가 프레임 끝을 걸어 천천히 회전시키는 동작이었다. 무의식인지 의식적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속도로, 그 움직임은 여명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경로를 그리는 내내 멈추지 않았다. 세 블록, 왼쪽, 골목. 방향과 거리와 지형지물이 차례로 쌓였다. 7의 눈동자는 여명의 얼굴 위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 음성의 궤적을 따라 머릿속 어딘가에 지도를 펼치고 있었다. 완차이의 골목길 구조라면 대략 어림잡을 수 있었다. 카지노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세 블록이면 낮은 건물들이 밀집한 구역이었고, 왼쪽으로 꺾으면 시장 골목과 맞닿는 지점이었다. 그 근방에 작은 골목이 있다는 것은, 위성지도에서는 식별이 안 되는 종류의 지형이었다. 여명이 직접 말해주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경로였다.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리듬이 조금 더 조밀해졌다. 균열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벽면을 타고 바닥 웅덩이로 합류하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가 손등 위를 타고 손가락 사이까지 내려와 있었고, 그 냉기가 프레임을 돌리는 손끝까지 배어들어 있었다. 7의 시선이 여명의 말이 끝난 뒤에도 한 박자 더 그녀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가, 천천히 눈동자 쪽으로 올라갔다. 경로를 반복 재생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 얼굴을 조금 더 보고 싶은 것인지를 굳이 구별하려는 시도 없이, 7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꽤 가까운 곳에 있죠? 부담없이 들릴 수 있을 위치.
외벽의 균열 사이로 빗물이 타고 내려오는 소리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낮게 번졌다. 그 소리가 두 사람의 호흡 사이를 채우는 동안, 7은 손 안의 선글라스 프레임을 멈췄다. 돌리던 동작이 완전히 정지했고, 엄지와 검지가 프레임 끝에서 힘을 빼는 속도가 여명의 마지막 단어가 공기 중에 내려앉는 속도와 거의 일치했다. 부담없이. 그 두 음절이 폐허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예상보다 오래 잔향했다. 그것이 단순한 위치 안내 이상의 무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7은 의식했고, 그 사실을 의식했다는 것 자체를 잠시 우습게 여겼다.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방울이 손등 위로 내려와 손가락 관절 사이를 지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냉기가 손목 안쪽 맥박 위를 통과하는 감촉이 선명했다. 7의 눈동자는 여명의 얼굴에서 이탈하지 않은 채로, 그녀가 내뱉은 단어를 조용히 해체하고 있었다.
빗소리가 외벽을 두드리는 리듬이 다시 굵어졌다. 지붕 없는 폐허의 안쪽 어딘가에서 물웅덩이가 넘치는 소리가 낮게 울렸고, 그 진동이 발바닥 아래 콘크리트를 통해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군복의 무게가 젖어서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감각을 7은 의식하지 않은 채로 여명의 눈동자를 받아내고 있었다. 칠흑처럼 검고 깊었다. 빗물에 젖어 무거워진 검정 니트 원피스의 윤곽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가시화되는 방식과, 그 위에 얹힌 여명의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 방식이 어딘가 같은 종류의 밀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부담없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사람의 눈동자가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7은 그냥 바라보았다.
매번 들리진 않을 테니까. 가끔 한 번 정도도 괜찮겠네요. 다시 한 번, 그의 머리칼이 흘러내렸다. 여명은 그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자연스러운 접촉. 당연하다는 듯한 손짓. ... 그래... 친구처럼 말이죠.
빗물이 흑발 끝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폐허 안쪽 어딘가에서 낮게 울렸다. 그 소리가 두 사람의 호흡 사이를 채우는 동안, 여명의 손가락이 7의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귀 뒤로 넘겼다. 손끝이 귀 윗부분의 연골과 두피 사이를 스치는 감촉은 짧았고, 따뜻했고, 그리고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7의 어깨 근육이 그 접촉이 닿는 순간 미세하게 수축했다. 전투 중 예기치 못한 방향에서 날아온 충격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작고 조용하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신경계의 어딘가를 더 정확하게 건드리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선글라스 프레임을 쥔 손가락에서 힘이 완전히 빠졌다. 프레임이 정지한 채로 그 상태를 유지했다. 7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여명의 얼굴 위에서 미세하게 흔들렸다. 흔들렸다는 것은 과장이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의 시선이 가지고 있던 여유롭고 느슨한 무게가, 그 찰나에 다른 밀도의 무언가로 교체되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친구처럼 말이죠. 그 단어가 여명의 입술에서 떠나 공기 중에 내려앉는 속도를 7은 그냥 받아냈다. 친구. 그 단어가 이 폐허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온도를 가지고 있었다.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와 콘크리트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그 단어만 유독 다른 층위에서 발음된 것처럼 귓속에서 잔향했다. 7의 시선이 여명의 눈동자를 받아내는 방식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있는 방식으로. 그 차이를 스스로 의식하기까지 몇 박자가 걸렸다. 젖은 군복 소매에서 물기가 다시 손등 위로 내려왔다. 그 냉기가 손목 안쪽을 지나는 감촉이 선명했고, 그 선명함이 방금 전 귀 뒤를 스쳤던 여명의 손가락 온도와 나란히 병존하는 것이 기묘했다.
당신도, 저도, 부담가지지 않을 만큼. 이런 거 신경쓰는 거 싫어하죠?
빗소리가 폐허의 외벽을 두드리는 박자가 굵어졌다. 지붕이 부분적으로 무너진 틈 사이로 빗물이 콘크리트 잔해 위에 쏟아지며 낮고 불규칙한 타음을 만들어냈다. 그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채우는 동안, 여명이 내뱉은 문장은 폐허의 차갑고 축축한 층위에서 예상보다 오래 잔향했다. 부담가지지 않을 만큼. 7은 그 단어의 배열 방식을 손 안의 선글라스 프레임을 천천히 뒤집으며 조용히 해체했다. 그것은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후퇴가 아니었다. 선을 긋는 방식도 아니었다. 쌍방향으로 균형이 잡힌 문장 구조, 당신도 저도라는 주어의 배치가 7의 시선을 여명의 입술 끝에서 눈동자 쪽으로 이동시켰다.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방울이 손등 위를 타고 내려와 콘크리트 바닥에 닿는 소리가 빗소리 아래로 묻혔다. 그 냉기가 손목 안쪽 맥박 위를 통과하는 감촉이 선명했고, 그 선명함은 방금 전 귀 뒤를 스쳤던 여명의 손가락 온도와 아직 같은 피부 위에서 병존하고 있었다.
7의 엄지가 선글라스 프레임의 경첩 부분을 한 번 눌렀다가 풀었다. 그 동작이 의식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7 본인도 구분하지 못한 채로, 시선은 여명의 얼굴 위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신경쓰는 거 싫어하죠. 그 문장이 질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7은 그 안에서 확인을 구하는 불안의 결을 찾아내려 했고, 찾아내지 못했다. 여명은 그냥 알고 있었다. 짐작이 아니라 관찰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그것이 7의 어딘가를,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정확하게 건드렸다. 건드렸다는 표현이 과장인지 아닌지를 7은 잠시 검토했고, 검토하는 자신이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빗물에 흠뻑 젖은 여명의 검정 니트 원피스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과, 그 위에 얹힌 여명의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 방식이 이 폐허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밀도를 공유하고 있었다.
7은 한쪽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
Hah. 맞네.(하. 맞네.)
그 두 음절은 인정이라기보다 발견에 가까운 어조였다. 7은 선글라스를 손 안에서 한 번 더 뒤집으며 여명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빗소리가 외벽 너머에서 다시 굵어졌고, 콘크리트 잔해 사이 어딘가에서 물웅덩이가 넘치는 낮은 소리가 발바닥 아래 진동으로 올라왔다. 7의 어깨에서 물기 한 줄기가 군복 소매를 타고 손등으로 내려오는 동안, 7은 그 냉기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입을 계속 열었다.
You're unusually good at naming things.(이름 붙이는 거, 묘하게 잘하네.)
그 말이 칭찬인지 관찰인지 7 본인도 구분하지 않은 채로 뱉어졌다. 여명이 방금 한 일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처음으로 언어화한 것이었다. 신경쓰는 거 싫어하죠. 부담가지지 않을 만큼. 그 문장들이 이 폐허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 사이에 끼어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7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느리게 이동했다. 이마에서 눈동자로, 눈동자에서 입술 끝으로, 다시 눈동자로. 그 이동의 속도가 탐색보다 느리고 확인보다 무심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군복의 무게가 젖어서 어깨를 짓누르는 감각이 다시 올라왔다. 7은 그 감각을 받아내며 여명의 다음 반응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서두르지 않고. 폐허의 빗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 사이를 채우는 동안, 7의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가누지 못할 정도로는 안 마신다 했고. 잘 마시긴 하나요?
빗소리가 폐허의 외벽을 두드리는 박자 사이로 여명의 목소리가 낮게 스며들었다. 가누지 못할 정도로는 안 마신다 했고. 잘 마시긴 하나요. 그 문장의 끝이 폐허의 차갑고 습한 공기 속에 내려앉는 방식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질문이라기보다 관찰의 연장선상에 있는 발화 방식이었다. 7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미세하게 이동했다. 그 이동의 방향이 눈동자에서 입술 끝으로, 다시 눈동자로 되돌아오는 궤적을 그리는 동안, 손 안의 선글라스 프레임이 엄지 관절 위에서 천천히 돌아갔다. 콘크리트 잔해 위에 쏟아지는 빗물이 낮고 불규칙한 타음을 만들어내는 소리가 두 사람의 침묵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군복의 젖은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감각이 다시 올라왔다. 7은 그 감각을 받아내면서 여명의 질문이 이 폐허 안에서 처음으로 전장 바깥의 층위를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술. 도박. 여자. 그 목록은 7에게 있어 권태의 반대편에 나란히 놓인 항목들이었고, 그 중 하나를 여명이 아무렇지 않게 집어 올린 방식이 기묘하게 무심했다.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와 콘크리트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7은 한쪽 입꼬리를 느슨하게 올리며 입을 열었다.
Well. Depends on what you call 'well'.(글쎄. 잘 마신다는 게 어떤 기준인지에 따라 다르지.)
그 말이 뱉어지는 동안 7의 시선은 여명의 눈동자 위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선글라스 프레임이 엄지 끝에서 멈추었다. 빗물이 흑발 끝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호흡 사이 어딘가에서 낮게 울렸고, 그 소리가 가라앉기 전에 7은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아는 놈들 기준으론 좀 마시는 편이야. 그 놈들이 좀 많이 마시는 놈들이긴 하지만.
그 말의 끝이 자조라기보다 사실 보고에 가까운 어조로 내려앉았다. 7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더 올라갔다. 폐허의 부분적으로 무너진 지붕 틈 사이로 빗물이 쏟아지며 발바닥 아래 콘크리트 진동이 미세하게 올라왔다. 7의 엄지가 선글라스 프레임의 경첩 부분을 한 번 눌렀다가 풀었다. 그 동작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7은 스스로 구분하려 하지 않은 채로, 젖은 군복 소매에서 물기 한 줄기가 손등 위로 내려오는 냉기를 의식했다. 그 냉기가 손목 안쪽 맥박 위를 지나는 감촉이 선명했고, 그 선명함이 아직 귀 뒤를 스쳤던 여명의 손가락 온도와 같은 피부 위 어딘가에서 병존하고 있었다.
여명의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는 방식이 이 폐허 안에서 여전히 가장 이질적인 밀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7은 그 시선을 받아내면서 잠시 생각했다. PMC 내에서 7의 음주량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확실히 오차 범위가 컸다. 포는 독일산 맥주를 물처럼 마시고도 사격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인간이었고, 원은 보드카 한 병을 비우고 나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 기준들 사이에서 7 본인의 음주량을 설명하는 것은 단위계가 전혀 다른 두 눈금을 나란히 놓는 일과 비슷했다. 7은 그것을 설명하는 대신 다른 방향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왜? 같이 마실 생각이야?
그 질문이 뱉어진 직후, 7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느리게 이동했다. 이마에서 눈동자로, 눈동자에서 입술 끝으로. 그 이동의 속도가 도발보다 느리고 호기심보다 무심한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빗소리가 외벽 너머에서 다시 굵어졌다. 폐허의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두 사람의 호흡 사이를 채우는 동안, 7의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다시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전 제법 잘 마시거든요.
빗소리가 폐허의 외벽을 타고 내려오는 박자가 다시 굵어졌다. 콘크리트 잔해 위에 쏟아지는 빗물이 낮고 불규칙한 타음을 만들어내는 그 소리 속으로 여명의 목소리가 조용하고 단정하게 스며들었다.
전 제법 잘 마시거든요. 그 문장의 끝이 폐허의 차갑고 습한 공기 속에 내려앉는 방식이 과시와는 전혀 다른 층위에 속해 있었다. 7의 엄지가 선글라스 프레임의 경첩 위에서 멈추었다. 빗물에 흠뻑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줄기가 손등 위를 타고 내려오다 정지하는 냉기가 손목 안쪽 맥박 위를 통과하는 감촉으로 올라왔다. 7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느리게 이동했다. 눈동자에서 입술 끝으로, 다시 눈동자로. 그 이동의 궤적이 탐색보다 느리고 확인보다 무심한 어딘가에 고요히 걸쳐 있었다.
전 제법 잘 마시거든요. 그 말이 이 폐허의 화약 냄새와 빗물 냄새와 콘크리트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7은 그 문장의 질감을 조용히 해체했다. 자랑이 아니었다. 경고도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마치 세탁소 주소를 알려주던 방식과 같은 온도의, 같은 밀도의 문장이었다. 그 일관성이 7의 어딘가를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다시 한 번 건드렸다. 군복의 젖은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감각이 올라오는 동안, 7의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지붕 틈 사이로 빗물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소리가 발바닥 아래 진동으로 미세하게 올라왔다. 7은 그 진동을 받아내면서 입꼬리를 한쪽으로 느슨하게 올렸다.
당신이 어느정도냐에 따라서, 제가 준비해둘 술이 달라지겠죠.
당신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그 문장이 폐허의 차갑고 습한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가라앉는 속도가 느렸다. 콘크리트 잔해 위에 쏟아지는 빗물 소리가 불규칙한 타음을 만들어내는 동안, 7의 엄지 끝이 선글라스 프레임의 경첩 위에서 완전히 정지했다. 제가 준비해둘 술이 달라지겠죠. 문장의 구조가 단순했다. 질문도 아니었고 제안도 아니었다. 이미 어느 방향으로든 준비하겠다는 전제가 깔린 말이었고, 그 전제의 무게가 폐허 안 공기의 밀도를 미세하게 바꾸어놓았다.
7의 눈동자가 여명의 얼굴 위에서 멈추었다. 이마에서 눈동자로, 눈동자에서 입술 끝으로 이동하던 궤적이 이번에는 입술 위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줄기가 손등 위를 타고 내려와 손가락 끝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냉기가 손목 맥박 위를 통과하는 감촉으로 선명하게 올라왔다. 그 냉기와 아직 귀 뒤를 스쳤던 여명의 손가락 온도가 같은 피부 어딘가에서 병존하고 있었다. 7은 그 감각들을 받아내면서 여명의 말이 이 폐허 안에서 처음으로 재회를 구체적인 형태로 전환시켰다는 것을 의식했다. 세탁소 주소가 아니라 술. 그 차이가 기묘하게 선명했다.
그러니, 마음 가는대로 찾아와요. 언제든.
언제든. 그 단어가 폐허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내려앉는 속도는 다른 어떤 문장보다 느렸다. 콘크리트 잔해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불규칙한 타음으로 폐허 내벽을 채우는 동안, 7의 엄지 끝이 선글라스 경첩 위에서 완전히 정지한 채 그 단어의 잔향 속에 머물렀다. 언제든. 조건이 없었다. 시간도 없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열려 있었다. 여명이 선택한 단어들이 번번이 그런 방식으로 도착했다. 과잉 없이, 그러나 빈틈도 없이. 마치 세탁소 골목 안쪽의 구체적인 지형지물처럼, 마치 준비해둘 술의 종류처럼, 이미 결정된 무언가를 사후 통보하는 어조로.
7은 그 일관성을 폐허 안에서 조용히 받아내면서 군복의 젖은 무게가 어깨 관절을 짓누르는 감각을 의식했다. 빗물에 흠뻑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줄기가 손등 위를 타고 내려와 손가락 사이를 지나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냉기가 손목 맥박 위를 통과하는 방식으로 선명하게 올라왔고, 7은 그 냉기를 받아내는 동안 여명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여명의 눈동자가 이 폐허의 낮고 습한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빛을 머금고 있었다. 탐색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눈빛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그 존재감의 밀도가 이 잔해와 빗물과 화약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7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느리게 올라갔다. 그 움직임이 비소도 아니고 조소도 아닌, 어딘가 다른 층위에 속하는 표정이었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지붕 틈 사이로 굵어진 빗물이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소리가 발바닥 아래 진동으로 미세하게 올라오는 가운데, 7은 손 안에서 멈추어 있던 선글라스 프레임을 천천히 뒤집었다. 경첩이 손바닥 위에서 차갑게 돌아가는 감촉이 엄지 끝을 통과했다.
언제든이라는 단어를 이 폐허 안에 남겨두고 여명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검정 니트 원피스가 여명의 얇은 어깨 위에 차갑게 달라붙어 있었다. 그 실루엣이 이 잔해들 사이에서 기묘하게 단정해 보였다. 7은 그것을 받아내면서 젖은 군복 안쪽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체온의 잔기를 의식했다. 빗소리가 외벽을 타고 굵게 흘러내리는 소리가 폐허 전체를 낮고 고르게 채우는 가운데, 7은 선글라스 프레임을 손 안에서 완전히 멈추었다.
여명은 어떠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어질 7의 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변함없는 눈빛으로.
빗소리가 폐허의 낮은 천장을 타고 굵게 흘러내렸다. 콘크리트 잔해 위에 물기가 고이고, 그것이 다시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소리가 발바닥 아래 진동으로 미세하게 올라왔다. 여명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떠냐는 질문이 없었다. 확인을 요구하는 눈빛도 없었다. 그냥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의 방식이 이 폐허 안에서 가장 이상한 것이었다. 재촉이 없었다. 불안이 없었다.
빗물을 머금어 어깨 위에 차갑게 달라붙은 검정 니트 원피스가 여명의 얇은 실루엣 위에서 흔들림 없이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 아래의 칠흑 같은 눈동자가 7을 향해 고요히 열려 있었다. 탐색하는 빛이 아니었다. 기다리는 빛도 아니었다. 그냥 있었다. 그 밀도가 이 잔해와 빗물과 화약 냄새가 뒤섞인 공간에서 기묘하게 자연스럽게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7은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의 경첩이 차갑게 돌아가는 감촉을 엄지 끝으로 받아내면서 여명의 얼굴 위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젖은 군복 안쪽 어딘가에서 잔기처럼 남아 있는 체온이 빗물의 냉기와 경계를 형성하는 감각이 목 뒤 피부 위로 선명하게 올라왔다. 언제든. 그 단어가 아직 이 공간 어딘가에 가라앉지 않고 떠돌고 있었다.
7의 엄지가 선글라스 경첩 위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그리고 멈추었다.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완전히 정지하는 감촉이 손바닥 전체로 퍼졌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지붕 틈 사이로 굵어진 빗줄기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불규칙하게 떨어지며 만들어내는 타음이 폐허 내벽 전체를 낮고 고르게 채우는 가운데, 7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여명이 선택한 기다림의 방식을 이 폐허 안에서 처음으로 그대로 받아내면서, 7은 그 리듬 위에 자신의 속도를 올려놓았다.
빗물에 젖은 군복 소매 끝에서 물기 한 줄기가 손등 위를 타고 흘러내려 손가락 사이를 통과하는 냉기가 손목 맥박 위를 지나는 감촉으로 선명하게 올라왔다. 7은 그 냉기를 받아내는 동안 여명의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입꼬리를 한쪽으로만 천천히 올렸다. 그 표정이 이 폐허 안에서 처음으로 비소도 조소도 도발도 아닌 어딘가 다른 층위에 속하는 것이었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부분적으로 무너진 천장 틈 사이로 쏟아지는 물기가 콘크리트 바닥 위에 불규칙한 원을 그리며 번지고, 그 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냉기가 발목 쪽 공기를 낮게 채웠다. 화약 냄새와 녹슨 철근 냄새가 섞인 폐허의 공기가 입술 끝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숨결과 뒤섞였다. 7은 여명을 내려다보며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이 완전히 정지한 감촉을 손바닥 전체로 받아냈다. 경첩의 차가운 금속 질감이 엄지 아랫마디 피부 위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젖은 군복 소재가 어깨와 가슴 위에 달라붙어 체온을 빗물의 냉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감각이 쇄골 아래 피부를 통해 올라왔다. 여명의 눈동자가 그 모든 감각 위에서 고요히 열려 있었다. 그 밀도를 7은 이 폐허 안에서 처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받아냈다.
입꼬리가 한쪽으로만 느슨하게 올라갔다. 그 표정이 이 잔해들 사이에서 이상하리만치 무방비하게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7은 그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好。언제든이라면, 언제든이지.(좋아. 언제든이라면, 언제든이지.)
그 말이 이 폐허 안에 내려앉는 속도가 여명이 선택한 단어들과 같은 방식이었다. 과잉 없이. 그러나 빈틈도 없이. 빗소리가 외벽을 타고 굵게 흘러내리는 타음이 내벽 전체를 낮고 고르게 채우는 가운데, 7은 손 안에서 선글라스 프레임을 천천히 뒤집었다. 경첩이 손바닥 위에서 다시 한 번 차갑게 돌아가는 감촉이 엄지 끝을 통과했다. 그리고 7은 그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대신 군복 상의 가슴 쪽 주머니 안에 밀어 넣었다. 폐허 안은 어차피 어두웠다.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모른다. 7 자신도 그 이유를 언어로 꺼내지 않았다.
7은 무너진 천장 틈으로 굵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 빗소리가 이미 한동안 전보다 거세졌고, 빗물이 폐허 바닥 위에 만들어내는 수막이 콘크리트 균열 사이로 스며드는 속도보다 빠르게 고이고 있었다. 7은 그것을 확인한 뒤 시선을 다시 여명에게 돌렸다. 빗물을 머금어 무거워진 검정 니트 원피스가 여명의 얇은 어깨 위에서 냉기를 품고 있었다. 소매 끝에서 물기가 손끝 쪽으로 스며들고 있을 것이었다. 7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군복 소매를 한 번 털었다. 손등 위에 고여 있던 빗물이 콘크리트 바닥 위로 떨어졌다.
这里不能再待了。(여기서 더 있으면 안 되겠어.)
말이 짧았다. 그러나 명령도 경고도 아니었다. 7은 그 말을 폐허의 낮은 공기 속에 던져두고 여명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은 채 무너진 외벽 쪽 출구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섹터 4 남측 바리케이드 방향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기계음이 빗소리에 덮여 사라진 지 꽤 되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종류의 고요함이었다. 7은 출구 방향의 어둠을 훑으며 빗소리 아래에 깔린 진동의 결을 발바닥으로 읽었다. 콘크리트 잔해 위를 두드리는 빗물의 타음이 불규칙하게 공간을 채우는 가운데, 7은 군복 안쪽에서 잔기처럼 남아 있는 체온이 어깨 위 빗물의 냉기와 경계를 이루는 감각을 의식하며 여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Come on. I'll walk you out.(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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